착각계 소설은 어떻게든 등장인물들이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등장인물들의 지능을 깎아내는 경우가 많다. 바깥에서 보기에 바보같이 보여야 웃기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주인공의 지능을 가장 많이 깎아내는 걸로 유머를 노렸는데, 그 때문에 저걸 눈치 못채는 놈이 어디있냐는 자연스러운 의문을 유발한다. 이 부분은 장르적 한계라고 감안하더라도, 소설의 전개 자체가 대체로 편의주의적으로 흘러가며, 현 미국 대통령을 패러디한 캐릭터과 군부 시절을 그리워하는 재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주인공을 조력한다. 일종의 국뽕채널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수단을 잘 골랐다고 볼 수 있겠지만, 완성도 자체가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리 높은 점수는 주지 못할 거 같다.
파르나르의 소설 속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파르나르는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인물이 평면적이다, 입체적이다를 떠나서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도대체 무슨 경험을 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됐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높은 평점 리뷰
현시점 컵라면의 고점. 다만 이후 행보를 보면 다시 찾아오기 힘든 고점일 것 같다.
검미성의 장점이자 단점이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로 밀고 나가는 고집이다. 검미성은 뛰어난 듯 하면서도 어딘가 결점과 약점이 있고, 행동의 가장 큰 밑바탕에 콤플렉스가 있는 캐릭터를 잘 쓰는데, 그런 결점있는 캐릭터가 기여이 인간찬가를 부를 때 사람은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작가가 잘하는 걸 잘했다.
조선 중~후기 미시사에 대한 논문이라도 쓰다 온 것 같은 작가다. 보통 이런 대학원생류(혹은 교수류) 작가들이 가지는 단점이 글에서 쉰내가 난다는 건데, 이 작가는 적당한 힙스터 기질 때문인지 그런 쉰내가 안 나고 오히려 블랙코미디 느낌이 강하다. 여러모로 명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다만 개인적으로 명원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이, 명원은 유머를 위해서 대체역사물의 장르적 재미요소를 많이 포기한 반면, 이 소설은 그런 장르적 재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블랙 코미디를 일종의 조미료처럼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역물이 클리셰 비틀기가 아직은 먹히는 비교적 마이너 장르인 덕이긴 한데, 그래도 현 세대 대체역사물의 마스터피스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