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수는 꽃 같았다. 밟으면 그대로 짓이겨져 빛을 잃는 그런.그래서 시시했고, 그래서 무시했다.그런데 그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사표, 수리해 주세요.”제 눈길 한 자락이라도 받고 싶었던 건지 제 주제도 모르고 까불었다.“윤해수가 이렇게 재밌는 인간인 줄 내가 미처 몰랐어. 아니면 일부러 숨겼거나.”“숨긴 게 아니라 노력한 겁니다. 사장님 취향에 맞게. 비서니까요.”“지금은 비서가 아니니까 맘껏 까불어도 된다?”뜨거운 듯, 따끔거리는 듯, 저린 듯. 온몸의 감각이 술렁였다.이 낯선 감정은 유일하게 윤해수를 볼 때만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나도 그게 궁금해. 윤해수보다 유능한 비서는 얼마든지 있고, 윤해수보다 쓸모 있는 여자는 차고 넘치는데,”“…….”“왜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윤해수만이 재미있는지.”윤해수는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기분이 상해도, 기분이 좋아도. 무서워도, 무섭지 않아도.언제나, 그게 좀 흥미로웠다.“사장님. 혹시 저를 좋아하십니까?”해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입술 움직임을 주시했다.무감한 듯 내던진 그 말이 앞으로 어떤 태풍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고.“박고 싶어, 윤해수한테. 지금 당장.”*본 작품은 15세이용가로 개정되었습니다.
“강주희 씨?” 깊고 묵직한 음성이 그녀의 머리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귀에 익은 목소리. 그리고 낯선 호칭. “…안녕하세요. 문태강 씨. 처음 뵙겠습니다.” 그였다. 10년 동안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녀의 빛이었다. “피차 원해서 나온 자리는 아닌 듯하니 간단하게 끝내죠.” “결혼에 관심이 없으신 건가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이 남자는 알까. 과거 자신이 무심하게 던진 다정 한 자락이 이날 이때까지 누군가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힘이 되었음을. 그러니 괜찮았다, 그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쯤이야. “저 문태강 씨 좋아해요. 저도 할 줄 알아요. 애 아니에요.” “내가 분명 얘기했을 텐데. 내 여기, 너 같은 맹꽁이한테 반응 안 한다고.” 단 하나, 그에게 이제 정말 영영 사랑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점만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