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정연은 처음으로 도련님을 만났다. “어머, 쟤는 누구야?” 손님들의 관심이 제 딸에게 쏠리자 정연의 아버지 임 씨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 딸년입니다.”“요즘 애들답지 않게 정말 착하네요.” 여름 내 밖에 나가 노느라 새까맣게 탄 정연의 얼굴이 그때만큼 빨갛게 달아올랐던 적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이 한 사람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집 주인의 아들이자 모두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그 남자였다.“자, 용돈이야.” 뻣뻣하게 굳어 있는 정연의 옆에서 임 씨가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도련님.”“어서 받아.” 정연이 쑥스러워하며 돈을 받지 않자 도련님은 정연의 손에 직접 돈을 쥐어줬다. 도련님이 정연의 마음으로 걸어 들어온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단지 그가 제가 평생 받아본 용돈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줘서가 아니었다. 제 손에 돈을 쥐어주던 그의 손, 그 손의 감촉... 그리고 그에게서 나던 냄새, 사람의 몸에서 그런 향기로운 냄새가 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정연에게 그의 몸에서 나던 향기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자취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날 이후, 정연은 도련님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몸에서 나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던 그 황홀한 냄새를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심장이 뛰고 온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도련님을 못 본지 벌써 여러 해째였다. 몇 년 사이에 도련님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는 내가 한때 이 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편의점 알바인 은경. 주인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편했다. 가끔 출몰하는 이런 개진상들만 없으면 말이다. “말보로 골드.” 많아 봤자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사천 오백 원.” 은경의 대답에 손님의 미간이 팍 찌그러졌다.“너, 말이 짧다?”“그러는 넌?”“너? 너 방금 너라고 했냐? 이게 미쳤나? 편순이 주제에 어디서 손님한테 따박따박 말대꾸야?” 남자가 주먹을 위로 치켜 올리려는 찰나, 누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쯤 했으면 이제 그만 하시죠.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안 보입니까?” 남자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권위가 실려 있었다. 진상남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한바탕 난리를 피울 기세더니 금세 표정이 달라지는 진상 남이었다. 하필이면 그의 뒤에 서 있는 남자는 그보다 키가 이십 센티 이상 커 보이고 어깨까지 떡 벌어진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은경의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이목구비에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일반인치고는 패션 감각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패션 감각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피지컬이 남다른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