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들이 궁금해 하는 모든 의혹들, 제 입으로 전부 답할 겁니다.”먹잇감이 입을 열었다.기자들은 광분했다. 셔터를 누르고, 플래시를 터트리고, 갖가지 자극적인 질문들을 던지느라 아수라장이었다.“단, 세계일보 정치사회부 송여진 기자와 단독 인터뷰로.”기자들은 웅성댔다. 코앞에 넘어져있는 여진을 몰라보고 ‘세계일보 정치사회부 송여진 기자’를 찾느라 혈안이었다.그 사이에서 넘어진 여진이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날카로운 손날이 들이 밀어졌다.“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그 날, 여진은 처음으로 후회했다.“자리 찾겠다더니, 거기가 마음에 들었습니까?”“…에?”“내 아래.”표태석의 아래에 엎어졌을 때도,“무슨 뜻이죠?”“무슨 뜻이냐면, 내가 사람 하나 탈탈 털어서 물고 뜯으면서 고고한 척 하는 기자 부류를 극도로 혐오한다는 뜻.”“기자가 흑백논리에 사로잡히면 되겠습니까? 무식한 걸 굳이 티내지는 마세요. 무능해보이니까.”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TS전자 로비 한 가운데서 그 수장에게 망신을 당했을 때도,“급하다고 남의 커피를 남한테 엎으면 되나요? 아실만한 분이.”“구차하게 내 거, 네 거 따지지 말죠. 그렇게 따지면 여기 있는 것 중 내 거 아닌 게 없잖아.”일부러 엎은 커피를 뒤집어써야 했을 때도 하지 않았던 후회를.아니, 어쩌면 여진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특종에 눈이 멀어 태석의 뒤를 밟은 지 28일째 되던 날.“네가 아무리 기를 써도 내 건 꿈쩍도 안 하니까 꺼지라고!”“그, 했는데, 꿈쩍….”아무도 모르는 그의 비밀을 알게 된 이상,태석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본 작품은 15세 이용가로 재편집된 작품입니다.]
10년 전, 얽히고 설킨 오해 끝에 와해된 호연과 태건은 서로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10년 후, 두 사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된다. 호텔을 인수하러 온 대기업 임원과, 그 호텔에 겨우 일자리를 구한 호텔리어로. 재회한 순간에도 초연한 호연을 보며 태건은 애증을 넘은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저를 볼 때면 늘 무감했던 얼굴이 빈틈없이 구겨지는걸 보고 싶었다. 저 때문에. 그래서 호연을 안았다. 싫다는 호연을 멋대로 밀어붙였다. 호연 때문에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된 제 불행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유호연이 도망쳤다. 10년 전처럼. 제게 굴려지다 도망친 호연이 우스울 줄 알았는데, 태건은 미치도록 신경 쓰였다. 잡고 싶었다. 찾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찾아낸 호연은 임신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건네왔다. 제 애도 아닌 아이를 임신했다고. 뒷골이 당겨오는 듯 한 것도 잠시, 태건은 호연을 몰아붙였다. “그 애 아빠라는 새끼, 굳이 살려두지 말 걸 그랬나.” “뭐?” “그럼 다시 말해 봐.” 그 애, 누구 애라고?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호연이라도 갖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