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 보통은 험상궃은 얼굴로 칼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이나, 능글맞은 얼굴로 인질을 붙잡고 협박하는 사람. 그것도 아니라면, 전혀 그렇지 않을 듯한 얼굴을 하고선, 영화처럼 눈 깜빡할 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 스무 세 살, 빚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했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그런데. 분명히 죽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살아있다. 심지어 내 목숨을 구해준 게, 귀신이란다! 귀신은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 했고, 그녀의 꾐에 넘어간 나는 사람 하나를 납치하러 가는 중이다. 이것은 범죄다. 한순간의 흔들림으로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죄책감이 나를 옥죄어 온다. “저기, 그... 납치, 해도 될까요?”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 무슨 질문을 한 걸까. 범죄자로서 얼굴을 못 든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난 다른 의미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디로 가나요?” 그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내 머릿속은 갓 꺼낸 도화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귀신에 홀린 바보 같은 납치범과 그를 따라온 이상한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쩌면 그때 그 말을 꺼낸 순간부터 모든 일이 꼬인 것은 아닐까? 범죄자라기엔, 납치범이라기엔, 이 남자, 아무래도 무언가 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