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우린 이혼했어. 하지만 한 비서와 나 사이엔 아직 1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잖아?” 이혼한 지 3년. 전남편 태욱이 겨울 앞에 나타났다. “한 비서의 도움이 필요해.” 겨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이기에 미간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내가 한 비서와 결혼한 이유를 잊지 않았겠지?” “그건 왜…….” “결혼해야만 J케미컬을 지킬 수 있다는 할아버지와의 약속.” 태욱의 말이 무겁게 툭 떨어졌다. 그 약속 때문에 J케미컬 대표, 강태욱은 비서, 한겨울과 결혼계약을 맺었다. “할아버지, 최근 몇 년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리셨어.” “설마…….” “할아버지는 지금, 한 비서와 내가 이혼하기 전으로 돌아가 계셔.” “말도 안 돼…….” 놀라 벌어진 겨울의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 비서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유난히 까맣고 커다란 겨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직선으로 맞닿은 태욱의 시선이 차갑게 파고들수록 그 흔들림은 더해갔다. 결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을 것만 같아 심장이 조여들었다. “내 옆으로 돌아와 줘. 내 아내로.” 왜 불길한 예상은 한치도 빗나가지 않는 것인지. “할아버지 앞에서만 내 아내인 척해 주면 될 일이야.” “아니요. 저는 못 들은 거로 하겠어요.” “거절하겠다?” 피식. 그는 입꼬리를 추어올리며 재킷 안쪽에서 돌돌 말아놓은 서류를 꺼냈다. 서두름 없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빼곡히 글자들로 채워진 서류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이걸 보고도 끝까지 거절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그가 내민 서류는 바로 5년 전 두 사람이 체결한 계약서였다. “어디에도 계약 종료일은커녕, 이혼으로 계약이 중지된다는 조항이 들어있지 않아.” “그럴 리가 없어요.” 겨울은 계약서를 들어 올려 훑고 또 훑었다. 없어……. 당연히 있어야 할 조항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한 비서에게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다면 내 제안, 받아들일 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