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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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윈 웨딩

결혼하라고 닦달하는 부모님을 피해 독립까지 했건만 이제 따로 사니 전화로 괴롭힌다. 그렇다고 부모님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고.    유진도 결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찼는데도 결혼을 안 하니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취급해서 기분이 나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이란 게 하고 싶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대 4년간 사법고시를 패스하기 위해 공부만 했고, 졸업 후에는 로펌에 들어와 죽어라 일만 하느라 연애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지 오래.    그런 유진에게 대학동기인 도영이 계약결혼을 제안한다.  “미쳤니? 내가 왜 너랑 결혼을 해?” “내가 어때서?” “결혼을 하려면 적어도 남자로 보여야 하는데 너는 나한테 남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거든.” “남자로 느끼게 해주면 되잖아. 가자. 당장 남자로 느끼게 해줄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도영의 말에 유진은 어이가 없다.    최도영이 누군가? 잘생겼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고... 커리어 면에서도 그는 다른 동기들을 앞서 나갔다. 국내 제일의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로고스’의 최연소 시니어변호사로 승진도 제일 빨랐다.    하지만 그는 유명한 바람둥이였다. 결혼한다고 갑자기 변할 인간이 아니었다.    이 인간 만만한 나랑 결혼해서 마음껏 바람을 피우려는 수작 아니야? 결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최도영과는 절대로 아니야.

거부할 수 없는 제안

묘하게 시선을 끄는 여자였다. 느슨하게 묶어 넘긴 머리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무난한 차림새까지 정연에게는 그 무엇도 특별한 게 없었다. 오히려 촌스럽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석은 자꾸 정연에게로 눈이 갔다.    온갖 소음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홀로 고고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일까. 다른 여자들은 기석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심지어 어디서는 기석의 이름을 언급하는 소리도 들렸는데, 정연은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마냥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묘하게 오기가 생겼다. 여자의 관심에 연연해 본 적이 없었건만 어째서인지 무심한 정연의 태도가 몹시 거슬렸다.  ‘뭔데 저렇게 도도한 거지?’ *** “원하는 게 뭐예요? 뜸 들이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하세요.”   기석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을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서로 윈윈 하는 거 어때요?”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기석은 정연답다고 생각했다. 대형견 앞에서 왈왈 짖어대는 치와와 같은 모양새긴 했지만 그래도 꽤 강단 있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윈윈? 좋지.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뭔데?” “비밀을 지켜주세요.” “그거라면 어렵지 않지.” “그쪽이 원하는 건 뭔데요?”   정연은 기석이 무엇을 요구할지 몰라 바짝 긴장했다. 기석이 뭘 원하든 정연은 거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