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나에게 기생하며 살아요.” 대운 그룹 서 회장의 손자 서도환, 그는 유독 수현에게만 너그러웠다. 그 너그러움을 발휘해 1년 전 제 청혼을 거절했던 수현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결혼을 구걸할 마지막 기회를. “그럴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거고요. 혹시 한 번 자고 나면 결혼이라도 해주실까 해서.” 또 이런 식으로, 거슬리게. “꿈이 크네요. 겨우 하룻밤에 결혼이라니.” “딱히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요.” “……다른 사람을 찾겠다?” 부러 신경을 긁는 것이 불쾌했다. 이대로 짓밟아 망가뜨리고 싶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애끓게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닌데 막상 다른 사람이 가진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그럼 결혼해야겠네.” “…….” “연수현 씨가 나 말고 다른 놈이랑 붙어먹는 건 싫거든요.”
“번거롭게 결혼 상대를 따로 구할 필요가 있나? 송 비서가 내 아내가 되면 일이 간단하잖아.” 그는 세상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된다고 믿는 오만한 남자였고, 결혼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딱히 나랑 결혼 못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있습니다. 제가 부사장님을 싫어합니다.”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너랑 결혼해야겠어.” 선심 쓰듯, 혹은 회유하듯. “남은 빚도 내가 전부 갚아 줄게. 너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거야.” 그의 제안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딱 너 같은 여자를 찾고 있었거든. 줄 건 주고 받아 갈 건 받아 가서 뒤탈 없이 깔끔하게 끝낼 여자.”
“애부터 가지는 것도 괜찮고.” “……뭐라고요?” 이건 회유일까, 협박일까. “네가 나랑 결혼할 방법. 임신 말고 더 있어?” “…….” 서오언의 표정을 보아하니 선심 같기도 했다. “네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게. 그러니까 매달려 봐, 결혼해 달라고.” ***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권지혜가 사라졌다. 다분히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술래잡기라면 질색이지만, 상대가 권지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잡아 움켜쥘 용의가 있었다. “……권지혜.” 늘 그림자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막상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허상 같은 존재. 족쇄를 채워서라도 가지고 싶은 가련한 나비. 가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망가뜨리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너무도 연약해 마음이 약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