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물질 작용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감정. 그걸 빌미 삼아 평생 서로의 목덜미를 잡으려는 것……. 사람들은 흔히들 사랑이라 칭하더군.” 도파민, 그리고 페닐에틸아민. 그 남자, 임유진은 사랑을 두고 그렇게 정의했다. “서하야. 널 힘들게 할지도 몰라.” “키스 한 번에 결혼이라도 해 달라며 발목 잡을까 봐 겁나세요?” 그 여자, 강서하는 생각했다.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 사랑의 불필요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대표님 마음을 바라보고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제 마음을 따라온 거예요.” 심저로 가라앉아 있던 유진의 눈이 순간 반짝하고 빛을 발했다.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기 바빴던 바보 같은 여자였다. “다시는 도망가도록 두지 않을 거야.” “그래도 반가워요. 4월의 눈을 당신과 함께해서.” 봄꽃 위로 내려앉는 눈. 태어나 처음으로 맞는 4월의 눈이었다.
“선생님한테 병 옮기기 싫어요.” “걱정 말아요. 그놈보다 내가 더 무서운 의사니까.” 까칠한 외과 전문의, 강지혁. 그의 환자가 된 여자, 한지민. 어느 날, 느닷없는 사고로 시작된 우연. 서로의 마음이 닿았다고 생각했던 순간, 또 다른 이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자신을 믿을 수 없었어요. 혹여나 당신에게 민폐가 될까 봐 겁이 났어요.” “다신 떠나지 마. 더 이상 여기가, 참지 못할 거야.” 지혁이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제 왼쪽 가슴에 가져다 댔다. 낮고도 애절한 목소리에 지민은 명치끝이 아릿해졌다. “사랑해요, 지혁 씨. 그 마음 꼭 쥐고 다닐 거니까 불안해 말아요.” 잔잔한 바람을 타고 귓가에 흘러들어 온 그 말.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홍채가 햇살을 만나 붉게 변했다. “사랑해. 늦어서 미안해.” 우연을 가장한 인연의 끝, 바람만이 아는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