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이야기가 따로 있냐고? 글쎄, 스케일이 컸으면 좋겠어. 천 년의 사랑, 전설, 운명…. 너무 어린애 취향이라고? 난 비극도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죽어도 괜찮아. 구르고, 깨지고, 못 볼 꼴 다 보는 것도. 단 열린 결말은 싫어. 기껏 읽었는데 이도 저도 아니면 화가 나더라. 이런 이야기면 좋겠다. 괴로움을 무릅쓰고 모두를 구원하는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자길 꼭 닮은 아들이나 딸이 있다면 더 좋겠어. 죽어서도 그 뜻이 이어지는 거야. 마치 이게 단순한 활자로 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이. 너무 애매하다고? 그럼 이건 어떨까. 애틋한 동양 로맨스 판타지. 너무 심플하다고.... 그럼 가볍지만은 않은 오락거리. 슥슥 읽고 재밌네,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문득 그날 자기 전에 한 번 생각나는 거야. 꿈처럼 마음에 잔잔히 남으면서도, 현실이 아니니까 쉽게 털어낼 수 있는, 하지만 제법 인상 깊은 이야기인 거지. 음,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중요한 건 ‘인연은 지독하다’는 메시지야.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머리 위에 돋아난 한 쌍의 사슴뿔이 같은 각도로 기울어지고, 수려한 미소가 이슬처럼 스며나왔다. 뿔에 달린 은종 소리가 참 예뻤다. “재밌군.”그가 희미하게 속삭였다. “지독한 사랑이 아닌, 지독한 인연이라.”씩 웃어보였다. 그래서 날 찾아온 거잖아? 쉽게 소화될 수 없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말랑말랑하게 반죽해주길 바라며, 꽃다발까지 들고. 그는 책상 위에 꽃다발을 내려놨다.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향기가 아름답게 곡선을 그리며 퍼졌다. 의자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먼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용에게서 시작된 이야기. 그건 여우, 꽃, 그리고 신들에 대해 예언과도 같은 울림을 품고 조근조근하게 이어지는 희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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