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주인공 ‘병수’는 과거에 여러 명을 살해한 전직 연쇄살인범이지만, 현재는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무너져가는 노인입니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척하며 딸 ‘은희’와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새로운 살인자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면서 이야기의 긴장이 시작됩니다.
이 소설은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인식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병수는 자신의 알츠하이머 증세로 인해 현실과 과거를 혼동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착각인지 독자와 함께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사람을 죽였던 경험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정확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소설은 독자의 신뢰를 끊임없이 흔들며 불확실성의 서스펜스를 창조합니다.
병수는 스스로를 "악을 처단했던 자"로 정당화하며, 자신만의 윤리관에 따라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신념조차도 점점 무너져 내립니다. 특히 새로운 살인자로 의심되는 남자가 딸 은희의 곁을 맴돌게 되자, 병수는 남은 이성과 본능을 다해 은희를 지키려 합니다. 하지만 기억이 끊어지고 인식이 왜곡되는 상황 속에서, 그의 판단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독자는 “정말 병수가 옳은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됩니다.
김영하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고 날렵하며 서사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병수의 내면 독백과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을 조각조각 엮어내며, 마치 한 편의 심리 미스터리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특히 병수가 점점 무너져가는 인지 기능 속에서도 ‘정의’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붙잡으려는 모습은 오히려 독자에게 잔잔한 슬픔과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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