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이 잠들어 있었다. 잊혀진 사람들의 이름과 기억들이 얇은 종이 위에 조심스레 적혀 있었지만, 바람 한 줌에도 쉽게 흩어질 듯 연약했다. 그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잊혀진 영혼들의 안식처였다.

서연은 어린 시절부터 종이 무덤에 대해 들었다. 할머니가 남긴 오래된 책장 한 켠에, 오래된 편지와 기록들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의 흔적과, 잊혀진 이야기를 하나둘씩 발견해 나갔다.

하지만 종이 무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억이 종이에 담겨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서연은 그 힘을 이해하고, 잊혀진 이들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작은 의식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의식을 치르는 밤, 종이 무덤에 담긴 이야기들은 서서히 살아 움직였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 사이로 잃어버린 웃음과 눈물이 섞여 퍼졌고, 서연은 그 가운데서 진실과 마주했다. 종이는 무겁고도 가벼운, 기억의 무덤이었다.

서연은 깨달았다. 종이 무덤은 기억을 지키는 동시에, 그것을 놓아주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잊혀진 이들은 그곳에서 잠들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누군가의 마음 속에서 다시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이후, 서연은 종이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종이 위에,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희망이 조심스럽게 얽혀 있었다. 종이 무덤은 그렇게 영원한 기억의 공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