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차곤 했다. 하지만 올해 봄은 달랐다. 꽃들은 피지 않았고, 차가운 바람만이 불어왔다. 마치 자연마저도 잠시 숨을 멈춘 듯, 모든 것이 얼어붙은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

지나는 매일 빈 들판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슬픔을 감추려 애썼다. 그녀에게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이 깃든 약속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봄마저도 기억을 잃은 듯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저 침묵과 냉기가 모든 것을 감싸 안았을 뿐이었다. 봄이 잊어버린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날, 지나가 오래된 숲속을 걷다가 작은 새싹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희망의 증거였고, 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녀는 그 새싹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 곳곳에 조금씩 생명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봄은 다시 기억을 되찾았고,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피어났다. 얼어붙었던 땅 위로 부드러운 꽃잎이 하나둘 내려앉았다.

봄이 피는 것을 잊었을 때, 세상은 잠시 멈춘 듯 보였다. 하지만 잊혀진 계절 속에도 희망은 숨 쉬고 있었고, 다시 찾아올 꽃들은 더 아름답게 피어날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