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시간, 텅 빈 대합실에선 가끔씩 캐리어 바퀴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불 꺼진 플랫폼 너머, 열차 하나가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멀어져갔다. 나는 고요한 역 안에서 조용히 앉아, 이 밤이 나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을 듣고 있었다.
한 남자가 낡은 코트를 걸친 채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엔 반쯤 마신 커피와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그의 시선은 멀리 있었고, 그 눈동자엔 수많은 이별과 기다림이 담겨 있었다. 서울역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향해, 혹은 누군가로부터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건 어쩌면, 도시가 주는 가장 진솔한 풍경이었다.
한밤의 서울역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낮의 분주함과는 다른, 쓸쓸한 정적이 공간을 감싼다. 피곤한 표정의 청년,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떨군 여학생, 그리고 담담하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년의 얼굴들. 모두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이곳에 모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고요한 동행자가 되어 있었다. 말은 없지만, 그 침묵 속에 더 많은 이야기가 존재했다.
잠깐의 정차처럼,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멈춰 서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서울역에서의 밤은 그 쉼표 같은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떠나기 위해, 누군가는 돌아오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도시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들 — 외로움, 안도, 그리움 — 모두가 이 밤을 채우고 있었다.
열차는 다시 출발하고, 플랫폼은 텅 비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역의 한밤은 끝났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 도시의 불빛 아래, 수많은 스침과 이별이 쌓여 또 하나의 기억이 된다. 그 기억은, 문득 어떤 밤, 다시 이곳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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