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그는 손길이 조용히 움직였다. 바깥은 고요했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소리 대신 밤바람만이 흩날렸다. 김치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지며 오래된 기억을 깨웠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이맘때쯤 김치를 담그던 모습, 그리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함께 나누던 웃음소리들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김치 속 고춧가루가 손끝에 묻을 때마다 그리움이 밀려왔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과의 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따뜻한 순간들이 함께 발효되고 있었다. 매운 냄새와 함께 스며드는 기억들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했다. 김치를 담그는 이 작은 행위가, 그리운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듯했다.
밤은 깊어가고, 김치통 뚜껑을 덮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변하지만, 김치처럼 숙성되는 기억들은 더욱 깊고 진해진다. 한 겹 한 겹 쌓여가는 정성 속에는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순간이 지나도, 그 사랑은 내 안에서 계속 살아 숨 쉴 것임을.
한밤의 부엌에서 느껴지는 김치의 매콤한 향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기억과 마음을 담은 그릇이었고, 오래된 시간들을 품어주는 공간이었다. 나는 김치를 담그는 손길에 나의 마음도 함께 담아 보냈다. 언젠가 이 김치를 나누며,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면서.
김치가 익어가듯, 내 안의 추억도 조금씩 깊어간다. 한밤중의 이 작은 행위가 나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겠지만, 이 밤의 김치와 추억은 나를 조용히 지켜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따뜻한 식탁에서 함께 웃을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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