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눈빛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공기처럼 가볍게 내 삶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그의 부재는 처음엔 실감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그의 연락을 기다리고, 웃음 섞인 목소리를 떠올렸다. 휴대폰 알림이 울릴 때마다 혹시 그가 아닐까 기대했고, 거리에서 비슷한 뒷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런 착각은 곧 허무함으로 바뀌었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을까. 나에게 실망했을까, 아니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나는 매일 밤 이유를 상상하며 그를 이해해보려 했다. 하지만 상상은 언제나 내게 상처만 남겼고, 이해는 닿지 않는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
시간이 조금씩 흘렀고, 그의 빈자리는 점점 익숙해졌다. 익숙해진다는 건 잊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지 않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가끔은 그의 마지막 말이 없었기에 더 오랫동안 그를 마음에 붙잡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만 그가 살아 있다. 웃던 얼굴, 사소한 말투, 손끝의 온기까지. 떠난 그가 남긴 침묵은 오히려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말없이 떠났지만, 그 침묵 속엔 우리 이야기의 모든 끝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하지만 대답은 없을 것이다. 그가 떠난 것도, 말이 없었던 것도 결국 그의 방식이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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