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사람』은 『쇼코의 미소』에 이어 더 깊어진 감정의 밀도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책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 거리감, 상처, 그리고 이해에 대해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질문을 던집니다. 제목처럼, ‘무해한 사람’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 무해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소설집입니다.

표제작 「내게 무해한 사람」은 화자인 ‘나’와 한때 가까웠던 선배 ‘지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둘은 과거의 불균형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고, 또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를 곱씹습니다. 이 이야기는 겉보기에 평범해 보일 수 있는 관계 속에도 지배와 위계, 폭력적인 무심함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선한 의도’만으로는 누군가에게 완전히 무해할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두가 내게 돌아오는 날」은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여성이 주인공으로, 상실의 고통과 자책, 그리고 혼자 남겨진 삶을 그립니다. 최은영은 이 이야기 속에서도 심리의 섬세한 결을 따라가며,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보려는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아치디에서」는 국제 구호 활동 중 만난 두 여성의 관계를 통해 다문화적 맥락 속 권력 관계와 감정의 엇갈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작가의 시선이 세계적 감수성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겉으로는 조용하고 무난해 보이는 관계들 속에 감춰진 폭력성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 오히려 무심함, 배제, 편견, 위선 같은 형태로 존재합니다. 최은영은 이를 굉장히 절제된 문장과 담담한 서술로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더 큰 파장을 안겨줍니다. 그런 점에서 『내게 무해한 사람』은 부드럽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