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연은 낡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벚꽃이 피어야 할 계절이었지만, 가지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겨울이 머물고 있었다. 기억 속 그날 이후로, 그녀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희연은 손에 쥔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의 그는 따뜻하게 웃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 미소 하나로도 세상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 하지만 그 웃음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사고가 있었던 그 해의 봄, 세상은 갑자기 차가워졌고, 그녀는 계절의 이름조차 잃어버렸다.
시간은 잔인하게 흘렀다. 사람들은 “이제 잊을 때가 되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러나 희연에게는 그 말이 가장 잔인한 위로였다. 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드는 일이니까. 그녀는 여전히 매년 그가 떠난 날, 같은 장소를 찾아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희연은 조용히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공기와 비슷했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바람, 그리고 희미한 꽃향기. 순간, 그녀의 귓가에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린 듯했다. “희연아, 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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