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도시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바람도 멈추고, 시계의 초침마저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다. 수진은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었다. 어둠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없음’이 오히려 불안하게 느껴졌다. 골목 끝의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더니, 곧 사라졌다. 세상이 숨을 죽인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도, 차들도, 심지어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수진은 휴대폰을 켰지만 신호가 없었다. 뉴스도 멈췄다. 모든 게 그대로인 듯하면서도, 어딘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

놀라움보다 이상하게도 평온이 찾아왔다. “드디어 나도 사라지는구나.” 속삭이듯 말하며 수진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쩌면 이건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기억 저편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이름을 잊은 목소리,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온기였다.

밤이 되자, 사라졌던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하지만 불빛 아래엔 그림자가 없었다. 수진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손끝으로 벽을 스쳐도,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세상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경계 너머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자, 따뜻한 빛이 번졌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 속에 나왔던 별빛의 세계. 그곳엔 아무런 고통도, 그리움도 없었다. 단지 조용한 평화만이 있었다. “이제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날 아침, 도시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햇살이 내리쬐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터로 향했고, 아이들은 웃으며 등교했다. 다만 한 가지, 수진의 집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창틀 위에는 희미한 빛 한 줄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