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 지하에는 누구도 찾지 않는 문서보관실이 있었다. 먼지가 쌓인 기록들 사이로 이름 없는 파일 하나가 끼어 있었다. 날짜도, 출처도 없는 그 문서의 표지는 텅 비어 있었지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 안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불린 이름이, 여전히 어딘가를 맴도는 것처럼.
아윤은 우연히 그 파일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손에 닿자마자 머릿속이 멍해졌고, 낯선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신의 것이 아닌 풍경들, 들은 적 없는 말, 그리고 누군가 애타게 부르던 이름—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잊혀졌다는 감각만이 뚜렷했다.
그날 이후, 아윤은 꿈속에서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내 이름을 기억해줘.” 목소리는 슬프고도 간절했으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거리에서, 거울 앞에서도 그 메아리를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 사라진 무언가가 자신을 찾아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조사를 거듭하던 중, 아윤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 중 하나에서 사람의 존재를 문서상으로 ‘지운’ 실험이 있었다는 것. 신분도, 이름도, 심지어 기억 속의 자리마저도 지워진 한 사람이 존재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 사람. 그 이름이 지금, 자신을 통해 다시 세상에 울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름이란, 단순한 단어가 아니야.” 아윤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워진 기록 속에서 그 사람의 흔적을 되짚어갔다. 벽에 쓰인 낙서, 책장 틈에 숨겨진 쪽지, 남겨진 사진 속 흐릿한 뒷모습.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단서들 사이에서, 이름의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그 이름을 되찾았다. 입술 사이로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렀을 때,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잊힌 이름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메아리는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다시 기록되었다. 더는 잊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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