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녘 왕국의 변방 도시 **벨카스(Belcas)**에서 최근 연쇄적으로 발생한 기이한 살인 사건이 대륙 전역에 충격을 안기고 있다. 피해자들은 모두 한밤중에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 발견되며, 오직 현장에는 바닥에 그어진 주홍색 선 하나만이 남겨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붉은 기억의 저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도시에는 다시 고대의 불안이 피어오르고 있다.
벨카스는 과거 붉은 전쟁의 발발지로, 수백 년 전 수많은 피가 뿌려졌던 장소다. 당시 사용된 금지된 혈마법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금기로 지정되었고, 전승 속에서는 이 마법이 영혼을 기억으로 묶는다는 말이 전해졌다. 최근 사건의 피해자들이 모두 전쟁 당시 사라진 귀족 가문들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살인이 아닌 ‘과거의 복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벨카스 수사국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기억 추적술을 전문으로 하는 방랑 마법사 **에리아(Elia)**를 초빙했다. 그녀는 사람의 피와 접촉해 그 안에 담긴 가장 깊은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때 스스로 혈마법을 연구했던 인물이다. 에리아는 첫 번째 범죄 현장을 조사한 후 단언했다. “이건 단순한 범죄가 아닙니다. 누군가, 잊힌 이름을 세상에 다시 쓰려 하고 있어요.”
수사가 진행될수록, 피해자들이 죽기 전 모두 같은 꿈을 꿨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꿈속에서는 주홍빛 비가 내리고, 이름을 잃은 아이가 피 웅덩이 위에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그 글자는 고대의 왕족 언어였고, 번역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이름 없는 자, 피로 돌아오리라.”
에리아는 이 사건의 핵심이 ‘피가 아닌, 기억의 흔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홍의 선은 피해자의 마지막 기억을 봉인한 지점이며, 그것을 해독하면 범인의 정체뿐 아니라 과거에 봉인된 왕국의 비밀이 드러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 봉인을 푸는 순간, 잊힌 존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주홍의 흔적”**은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가 아닌, 기억과 피로 얽힌 오래된 죄의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 그 잊힌 진실이 다시 세상 위로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살인이 아니라,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과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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