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엘더라의 대기록관(Grand Archive of Eldra)**은 천 년 넘는 역사를 지닌 지식의 요새였다. 이곳은 단지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아닌, 왕국의 기억을 수호하는 장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달, 이 기록관의 수석 기록관이자 침묵의 학자로 불렸던 **세라핀 아벨(Seraphine Abel)**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봉인된 구역의 문 하나가 열려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아무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그 구역에서, 고대 금서 한 권이 사라졌다고 한다.
기록관 내부 규정에 따르면, 금서들은 "기록해서는 안 될 역사", 즉 왕실이나 신성 교단조차 감추고 싶은 진실이 담긴 문서들이다. 그 존재 자체가 외부에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이를 지키는 수석 기록관은 '진실을 읽되 말하지 않는 자'로 교육받는다. 세라핀은 수십 년 동안 이 원칙을 지켜온 인물로, 그 누구보다 충직하고 조용한 학자였다. 그런 그녀가 남긴 것은 단 하나,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고대 문자 한 줄이었다.
“기억이 말을 시작하면, 세계는 무너진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관 **라이언 카스(Rhian Kass)**는 본래 왕실 정보국 출신으로, 실종 사건 뒤에 단순한 배신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의심한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세라핀의 사적인 기록을 하나둘 복원하며, 그녀가 ‘기억을 봉인하는 방법’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여는 열쇠를 연구하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오래전 기록관이 감췄던 ‘잊혀진 왕조’에 관한 단서를 추적 중이었고, 그것이 왕국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진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기록관의 지하에서 발견된 은밀한 장치, 그리고 특정 책에만 반응하는 마법 문장은 세라핀이 남긴 퍼즐의 일부였다. 라이언은 이 문장들이 기억을 봉인한 마법의 일부이며, 이를 모두 해독하면 ‘기록된 자의 기억’을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그 기억 속에 담긴 것이 단순한 역사 조작이 아니라 왕국의 창조 그 자체에 대한 거짓말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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