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는 곳이 있었다. 파도는 없고,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며 아무런 흔들림도 없었다. 그 바다 위를 걷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다만 전설만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누군가는 그 아래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곳이 신들의 무덤이라고 말했다.

리나는 어려서부터 유리 바다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바다를 절대 가까이하지 말라 했지만, 리나는 매일처럼 절벽 위에 앉아 그 수면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다 밑에는 흐릿하게 보이는 구조물들, 마치 뒤집힌 도시처럼 기묘한 형상들이 떠 있었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리나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곤 했다. "깨어나야 해. 잊힌 약속을 지켜야 해."

열여덟 번째 생일이 되던 날, 리나는 유리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밤이었고, 별빛이 바다 위에 내려앉아 길을 만드는 듯 보였다. 그녀가 바다 위를 조심스럽게 걷자, 수면은 깨어지지 않았고 마치 단단한 유리처럼 발밑을 지탱했다. 점점 중심으로 갈수록 목소리는 또렷해졌다. “문을 열어. 넌 마지막 열쇠야.”

바다 중심에는 커다란 유리 돔이 있었다. 리나가 손을 대자, 수면이 아래로 꺼지며 그녀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 아래 감춰져 있던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은 없었다. 대신 공중에 떠 있는 고래와 별빛처럼 빛나는 건물들, 그리고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존재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리나를 보며 무릎을 꿇었다. "환영합니다, 잊힌 여왕이여."

리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녀는 예전에 그 세계의 수호자였고, 유리 바다를 만들어 잠시 세계를 봉인했던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지상에서는 그녀의 존재가 잊혔고, 바다만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그 자리로 돌아와, 유리 바다 아래 잠들어 있던 숨겨진 세계의 숨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유리 바다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반짝이는 도시와 하늘을 나는 생물들로 가득한 신세계였다. 사람들은 이제 전설이 진실이었다는 걸 믿게 되었고, 리나는 두 세계를 잇는 문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그 바다의 조용한 반짝임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