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층집이었고, 따뜻한 벽지와 오래된 시계가 걸린 거실, 창밖으로 햇살이 드는 주방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집에 들어온 사람마다 어느 순간 **“계단 아래”**를 쳐다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짐 하나 놓이지 않은 텅 빈 그곳은 설명할 수 없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나는 오래된 저택을 물려받은 뒤, 혼자 그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녀는 늘 같은 꿈을 꾸었다. 계단 아래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숨소리는 들렸다. 그리고 그 존재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조용히, 그녀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는 그 침묵이 두려웠다. 무언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혹은 소리를 내면 깨질 것 같은 기묘한 긴장감이 계단 아래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일부러 음악을 틀어놓고 집안일을 했다. 그런데 음악이 계단 아래를 지나갈 때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소리를 빨아들이는 듯 갑자기 사라졌다. 그곳엔 **'소리조차 머물 수 없는 침묵'**이 존재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한나는 결심했다. 계단 아래를 제대로 마주하기로. 손전등을 들고 허리를 숙인 그녀는, 바닥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씨를 발견했다. “나는 여기 있다. 잊히는 중이다. 잊지 말아줘.” 한나는 손끝이 떨렸다. 그 문장은 그녀가 어릴 적, 사라진 동생과 마지막으로 나눈 말과 똑같았다.
한나는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수년 전, 이 집에서 함께 살던 동생은 실종되었고, 경찰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가족은 무너졌고, 그녀는 모든 걸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계단 아래의 침묵은,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말없이, 조용히, 잊힌 존재의 외침을 품고.
그날 이후, 한나는 계단 아래에 작은 의자를 두었다. 매일 아침, 거기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했다. 들리지 않을 수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알았다. 어떤 침묵은 공포가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다림은, 누군가가 다시 기억해주기만을 바라는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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