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어둠에 잠겼다. 하지만 그 밤, 한 동네의 집들만은 이상하게도 불빛이 꺼지지 않았다. 가로등은 밝게 빛났고, 집안 창문마다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처음엔 기뻐했지만 곧 이 불빛 속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수진’은 그 불빛이 꺼지지 않는 집 중 하나에 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불을 켜둔 채 잠자리에 들었지만, 깊은 밤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낯선 목소리와 속삭임을 들었다. 불빛 아래 그림자들이 살아 움직였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집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 혼자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공포였다.
이웃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들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울음을 터뜨렸고, 어른들은 불안에 떨며 집을 나서려 했지만 불빛은 계속해서 집을 감싸며 그들을 붙잡았다. ‘불이 꺼지지 않는 밤’은 점점 주민들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과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수진은 옛 마을 도서관에서 이 현상에 관한 기록을 찾아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때도 불빛은 끊임없이 켜져 있었지만 곧 마을에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그 불빛은 ‘잊힌 기억과 미해결 감정’이 모여 형성된 일종의 정신적 공간이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수진과 이웃들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모두 자신들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지 못한 탓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잊었던 상처와 감정을 함께 마주하기 시작했다. 불빛은 점차 부드러워졌고, 밤은 서서히 진정되었다.
다음 날 아침, 처음으로 동네의 불빛이 모두 꺼졌다.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수진은 알았다. 불빛이 꺼졌다는 것은 어둠을 완전히 없앴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빛과 어둠을 조화롭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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