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는 인간의 존재, 삶과 죽음, 예술과 자기파괴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자살을 돕는 ‘안내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를 통해 현대인의 공허한 내면과 삶의 무의미함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소설의 제목 자체가 강렬한 도발이자 질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소설의 화자는 자살을 원하는 이들을 찾아내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동행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냉정하고 차분하지만, 동시에 깊은 이해와 연민을 지닌 인물로 그려집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자살 희망자들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에 상처와 외로움을 지닌 인물들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현대 사회의 소외와 인간관계의 단절을 체감하게 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보다 더 예술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쌍둥이 형제, 그리고 예술가 지망생, 영상 속에 존재하는 여성 등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꿈과 환각, 기억과 망상의 혼란을 안겨줍니다. 김영하는 이러한 모호한 경계를 통해 자아 정체성과 존재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삶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임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와 사유의 흐름이 중심이 되는 문학입니다. 작가는 영화,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텍스트 속에 섞어 넣어 다층적인 감각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카라바조의 그림 같은 예술작품을 매개로 인간의 욕망과 죽음을 연결시키며, 삶을 하나의 예술적 행위로 해석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도시화, 개인주의, 실존적 고독 등을 배경으로 하며, 당시 젊은 세대의 불안과 방황을 생생히 담아냅니다. 이는 단지 세대의 문제를 넘어, 인간 존재 자체의 의미를 묻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이 작품은 자살이라는 금기 주제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독자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결국 이 소설은 죽음을 찬미하거나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삶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김영하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러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며, 독자 각자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현대 한국문학의 문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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