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을 쓴 황제가 앉아 있었다.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가까운 신하들조차 그 모습 뒤에 어떤 표정이 숨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경외했고, ‘하얀 가면의 황제’라는 이름은 곧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황제가 처음 가면을 쓰게 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이는 얼굴이 저주에 의해 일그러졌다고 했고, 어떤 이는 신의 얼굴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선택했다고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면을 쓰고 나타난 이후 제국은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그가 과연 인간인지 의문을 품었고, 신하들은 그의 명령이 점점 냉혹해져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얀 가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갑고 기계적이었으며, 마치 인간이 아니라 철과 돌이 내는 소리 같았다.

궁정 안에는 불길한 소문이 돌았다. 황제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며, 지금의 황제는 가면 그 자체라는 이야기가 퍼졌다. 가면이 인간의 영혼을 삼켜 제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소문은 입을 막으려 해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확인하려 한 자는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밤, 젊은 사관 한 명이 비밀리에 황궁의 깊은 전당으로 발을 들였다. 그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결심으로 칼을 움켜쥐었지만, 커다란 전당 한가운데서 하얀 가면의 황제를 마주하는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황제의 가면은 마치 생명을 가진 듯 서서히 움직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