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에 발표한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에 발표되었으며,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의 인간상과 사회상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인 '무정(無情)'은 ‘정이 없다’는 의미로, 냉정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그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소설의 중심 줄거리는 주인공 이형식과 두 여인 영채와 선형 사이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형식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으로, 전통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영채는 형식과의 약혼녀이지만, 구시대의 여성상을 대표하며, 선형은 신여성으로서 근대화된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이 세 인물을 통해 작가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인이 겪는 내면의 혼란과 갈등을 드러냅니다.

『무정』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근대 의식의 형성과 민족 계몽을 주제로 한 계몽주의 소설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교육, 과학, 문명, 여성 해방 등 근대적 가치들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형식이 전통적인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결국 선형을 선택하는 결말은, 시대의 진보를 상징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일본의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의 독립과 자강(自强)에 대한 이광수의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민족을 계몽하고, 서구 문명을 수용함으로써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곳곳에서 드러나며, 이는 당대 지식인들의 공통된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사상이 일본 제국주의와 일정 부분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함께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