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발표한 대표적인 단편소설로, 한국 문학사에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제목인 '무진'은 주인공이 자라온 고향의 이름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공간이지만, 주인공의 기억과 감정이 투영된 상징적 장소로 기능합니다. 이 작품은 도시와 시골,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며,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탐색합니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성공한 엘리트 출신의 주인공 윤희중이 업무 차 무진이라는 시골 마을로 출장 가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무진에서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여교사 하인숙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의 흔들림을 겪습니다. 무진은 그에게 과거의 순수함과 동시에 현재의 위선과 공허함을 자각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윤희중의 내면적 갈등과 자아 인식이 있습니다. 그는 도시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무진에서 느끼는 감정의 혼란과 하인숙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외부의 기대에 맞춘 껍데기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자각은 곧 잊혀지고, 그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을 선택합니다. 이는 결국 현실에 타협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자기기만을 상징합니다.

무진은 자연과 안개로 가득 찬 몽환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며, 윤희중의 내면을 투영하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안개는 불확실함, 망각, 무의식의 세계를 상징하며, 윤희중이 뚜렷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진실과 감정을 형상화합니다. 무진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이 투사된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간의 이중성은 작품 전체에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김승옥의 문체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현대적 문체로 주목받았습니다. 내면 묘사와 풍경의 이미지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윤희중의 감정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1960년대 산업화 초기, 도시의 차가움과 시골의 따뜻함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당시 젊은 세대의 정서와 가치관의 혼란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진기행』을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 이상으로 확장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