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서늘해졌고, 나뭇잎은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그중에서도 단풍나무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색을 드러냈다. 깊고 짙은 붉은빛은 마치 말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듯했고, 나는 그 아래 조용히 서서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단풍이 지는 모습은 슬프면서도,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실려 내 발끝에 내려앉았다. 손에 쥐자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바스락거리는 그 잎은, 누군가와의 오래된 추억처럼 소중하면서도 아픈 감정을 불러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계절을 함께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말을 서로 남기지 못한 채 스쳐 지나왔는지. 붉은 단풍은 지나간 시간의 조각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종종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특별한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 찬란한 순간은 늘 짧고, 우리는 그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지는 단풍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길을 걷다 보면, 바람결에 실려 내려오는 잎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떤 잎은 발끝에 닿고, 어떤 잎은 그대로 멀리 날아가버린다.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다. 어떤 이는 내 곁에 머물고, 어떤 이는 잠시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내 가을을 채운 존재였다. 단풍처럼, 아무리 짧아도 그 색은 선명했다.
오늘도 붉은 단풍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나무는 점점 비워지고, 하늘은 조금 더 투명해졌다. 나는 그 아래에서 눈을 감고 속삭였다. “잘 가, 고마웠어.”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나는 떠나는 모든 것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봄이 오듯 새로운 만남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