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태어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는 존재였으며, 단지 ‘공허(Void)’라 불렸다. 공허는 모든 것의 끝이자 시작이었다. 수많은 세계가 생겨나고 사라질 때도, 공허는 변하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 공허 속을 자의로 걸을 수 있는 단 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공허를 걷는 자’, 곧 보이드워커(Voidwalker) 라 불렸다.
보이드워커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시간과 차원을 넘나드는 존재였다. 그는 죽은 별들의 기억을 읽고, 무너진 문명들의 언어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었다. 존재는 하나였지만, 목격자는 수백 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였고, 그조차도 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만난 자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었다’고 속삭였다.
한 폐허 행성에서, 젊은 기록자 ‘카일라’는 잊힌 문명의 잔해를 조사하던 중 수상한 낙인을 발견한다. 그것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보이드워커가 이동한 자리를 남긴 흔적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별이 뒤집히고,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눈을 마주친 존재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장면들. 그녀는 점차 자신이 단순한 고고학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공허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카일라는 점점 인간의 지각 너머의 지식을 얻게 된다. 빛과 어둠 사이, 생명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보게 되었고, 그 사이로 ‘걷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녀는 결국 ‘문’을 열고 공허 속으로 들어가며, 자신의 존재가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보이드워커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친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듣는다—보이드워커는 단 하나가 아닌, ‘선택된 다음 존재’에게 계승되는 운명이라는 것.
공허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드워커는 기억을 남긴다. 카일라는 모든 과거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간적인 삶과 감정을 태워 공허 속에서 재탄생한다. 이제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잊었고, 새로운 이름조차 없다. 단지 ‘걷는 자’로 불릴 뿐이다. 그녀는 생명계를 넘어, 존재의 틈을 따라 걸으며 균형을 유지하는 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재앙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녀가 나타날 때, 세계는 변한다. 그리고 그 흔적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
"그녀는 공허 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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