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용이 다스리는 대륙에 어느 날부턴가평화를 깨뜨리는 ‘빙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제가 당신이 어릴 적 잃어버린 첫사랑이에요”라고 황태자를 꼬시질 않나,“내가 미래를 아니 나와 계약결혼합시다”라고 혈혈단신으로 북부 대공을 찾아가질 않나,"악한 용을 처단하겠다!"라며 검은 용 앞에 나타나기까지.결국 참다 못한 용이 빙의자들을 처단하며 대륙은 차츰 평온해지는 듯했는데…소왕국 벨파스트에 나타난 무려 33번째 빙의자.여태까지의 빙의자들과는 달리 황태자나 북부 대공에게는 관심도 없고,“다이아몬드 등급이 되시면 그냥 돈이 굴러들어옵니다!”라며 한탕 사기 치고 제국의 수도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으아아악!!”어느 날 천벌처럼 벼락이 33번째 빙의자에게 내리치고야 만다. 그리고 19살 생일을 기대하며 잠들었던 진짜 아나이스가 그 순간 돌아왔다.“아나이스가 벼락을 맞았어?”게다가 거액의 사기를 쳤다고??벨파스트의 공주님인 내가?“아나이스는 기절 좀 할게….”그러나 아나이스가 기절할 틈도 없이빙의자를 처단하는 창룡기사단장 엘리엇이 들이닥친다.“순순히 함께 가시죠!”아니야! 아니라고! 걔 없어! 갔어! 갔다고!--표지 일러스트 : SUKJA
남주, 여주의 사랑에 화려하게 깽판을 놓다 장렬히 사망한 전직 악녀, 릴리트. 못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더니, 소설 속 계모에게 구박받다가 최악의 쓰레기에게 시집가는 비중 없는 조연에 빙의했다. 이번에는 착하게 살기로 결심한 릴리트는 계모와 새언니들을 갱생시키기 위해 사상 최고의 악당을 고용하는데. “그러니까 애인인 척해서 집안에 깽판을 놓으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맞아! 열심히 못된 짓을 당하면 그들도 착하게 살 거야. 나처럼!” 악역에게 적성에 맞는 일을 던져줬더니 너무 잘한다. 이제 계모와 남작만 완벽히 물리치면 조연의 본분에 맞게 착하고 조용하게 살아야지. 그전에 이 남자에게 고마우니까 힌트를 좀 주고. “인생 망치기 싫으면 짝사랑은 절대 하지 마.” “내가 짝사랑을 할 일이 있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전직 악녀의 한이 서린 충고를 무시하다니! 그렇게 쉽게 장담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그가 사르르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이미 애인이 있는데, 짝사랑을 왜 해야 하지?”
그리하여 남주와 여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소설의 흔한 끝맺음이다. 과연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해피엔딩을 맞은 소설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한 적은 있었다. 물론, 직접 겪어보고 싶다는 뜻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런데 읽던 책의 악녀로 빙의하다니? 이렇게 된 이상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멋지게 퇴장하여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리라, 결심했건만. 오 년 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푸르른 얼음 성 앞.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이 세계의 남주이자 내 전남편을 주워왔다. “너는 누구지?” 그런데 나를 모른단다. “그리고…… 나는 대체 누구야?” 환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