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카의 고민>이란 책에서 악녀로 등장하는 이젤 후작가의 블렛으로 빙의됐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원래 난 진짜 블렛 이젤이다. 열두 살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김지안에게 빙의되어 9년 동안 지안으로 살다가 이번에 다시 블렛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빙의, 편도가 아니라 왕복이었냐!” 원치 않은 왕복 빙의만으로도 짜증 나 죽겠는데, 현재 블렛의 상황은 엉망진창이다. 그렇게 난 블렛을 학대한 지롤 백작 에드바르드와 사기꾼 집사 게롤드를 이젤 후작가에서 치우고 날 사랑으로 보살펴 준 지희 언니에게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데……. “블렛! 왜 그렇게 웃기게 생겼어요? 진짜 재미있어!” 오드아니 제국에 하나밖에 없는 공작이자 황제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배경을 가졌으면서도 유독 <안젤리카의 고민>에서는 존재감 없었던 조연 중의 조연, 나델이 그야말로 미친놈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심지어 블렛에게 차갑기 그지없었던 남자 주인공 레이지도 변한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젠장……!” 결국 변해 버린 악녀에게 남자가 꼬이는 빙의물 클리셰는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쨌든 나는 그 어떤 유혹과 고난이 찾아와도 반드시 이겨 내고 언니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반드시!
연구소의 실험체로 잡혀온 남주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심부름꾼 아이로 빙의했다. 실험이 성공해 남주가 힘을 얻으면 연구소는 불바다가 된다. 그러니 그전에 도망가려고 했지만, 잔혹한 실험을 당하고 괴로워하는 남주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연구원들 눈을 피해 몰래 이것저것 챙겨줬다.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은 뭐야?” “이름 같은 거…… 없어.” “네가 지어줘.” “어?” 어쩌다 보니 남주와 조금 친해졌다. “날 버리고 갈 거야? 그러지 마.” “아…… 하지만-” “아니스, 넌 내가 잘못돼도 좋아?” “으…… 아니. 아니, 싫어.” “그럼 곁에 있어 줘.” 하지만 실험의 부작용으로 괴로워하는 그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원작 여주뿐. 나는 그를 돕다가 제 짝을 찾아가도록 몰래 떠나려고 했는데……. “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전부 거짓말이었어?” 불타는 연구소를 배경으로, 에밀리안이 서늘한 눈으로 웃었다. “착한 아이는 약속을 지켜야지.” 뺨에 닿는 손의 온도가 차갑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옭아맬 듯이 감겨든다. “대답, 안 해줄 거야?” ……어쩌지.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집착광공 남주를 피해 1년간 살아남아야 한다. 19금 피폐 BL소설 속으로 빙의했다. 미인수를 질투하고 괴롭히는 악역으로. 그리고 무인도는 원작에서 미인수와 집착 광공이 이어지는 장소인데 왜 나까지 같이 갇힌 거지? 더 큰 문제도 있었다. 원작에서 베타였던 나는 오메가로, 오메가였던 미인수는 알파로 발현했다. 엉망진창이네. “이브, 네게서 오메가의 향이 나.” “거기서 더 다가오면 쏘겠습니다.” 나를 죽일 듯이 미워하던 집착 광공이 페로몬 향을 맡고 눈에 맛이 가 버렸다. 미친놈이 총을 무시하고 다가온다. 어쩔 수 없지 탕!
원작에서 황태자를 납치하는 악당으로 빙의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황태자가 아니라 최종 보스인 흑막을 납치했고, 흑막은 납치당한 충격으로 기억상실까지! “당신은 누구시죠? 저는 누구죠?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곱게 달래서, 이왕이면 날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공작가로 모셔다 드려야지 했는데...... “공녀는 정말 조심성이 없으시군요.” 어째 점점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외간 남자와 이렇게 침실에서 둘만 있는데도, 전혀 긴장하질 않으시잖습니까.” “공작, 아니 킬리안 님.” “예.” “제가 말씀 안 드렸군요. 킬리안 님은 약혼녀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돌려보내리라. 그렇게 다짐한 순간. 어깨가 밀려 땅으로 쓰러졌다. 등이 땅에 닿고, 머리카락이 촤르르 흩어졌다. 그녀를 가둔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내려다보았다. “제 약혼녀는 공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던가요?” 흑막님이 검은 속내를 기꺼이 드러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