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매끈한 선로가 어느덧 잉그람의 드넓은 국토를 동서남북으로 가로질렀고,거대한 비행선은 상용화를 꿈꾸며 매일같이 공장에서 발전을 거듭했다.과학의 산물이 비로소 만인에게로 퍼져 가고 있었다.그럼에도 여전히 맨손으로 불을 피워 내고 주문으로 비를 내리는 전능한 자들이 있다.빛나는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 과학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고의 재능.예부터 사람들은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우러렀다.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귀신으로 불린 그들은 마녀(魔女)였다.위대한 마녀의 딸로 태어났지만 재능을 조금도 물려받지 못한 불운한 마녀 디아나.“세상에 너처럼 쓸모없는 마녀는 처음 본다.”일곱 살 어린 나이, 스승 밑에 들어간 순간부터 디아나가 바란 것은오직 하루빨리 독립하여 사랑하는 언니, 헤스터와 단둘이 행복하게 사는 것뿐.하지만 독립한 직후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조차 암운이 감도는데…….“너, 이번 여행은 조금 길겠어.”별이 내려 준 불길한 예언은, 어떤 미래를 가리키고 있을까.
‘네가 언니니까 동생에게 양보해야지.’‘언니가 동생을 위해 그것도 양보 못해?’몸이 아픈 동생, 리엘을 위해평생 그녀의 그림자로 살아왔던 이렌.이렌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동생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기 전까지.“언니라고 부르지 마. 이제 난 네 언니가 아니니까.”“지금 그걸, 언니가 동생에게 할 말이니?”“그렇다면 왜 리엘은 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거죠? 저는 리엘을 위해 모든 걸 포기했는데.”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집안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리고 가족들에게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도.‘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아.’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자각한 이렌은 독립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선다.그런 그녀 앞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대공자, 노엘 크리스탄이 눈에 띄는데…….* * *“나와 결혼을 하겠다는 겁니까.”“필요에 의해서요.”“무모하군요. 대공가 안주인 취급 같은 걸 원한다면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권력도, 사랑도 필요 없어요. 그저 형식적인 결혼, 그거면 돼요."노엘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서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구름이 걷히고 이렌의 눈동자가 빛을 머금었다. 이렌은 똑바로 그를 향해 말했다.“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표지 일러스트 : HABAN타이틀 디자인 : 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