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이라고 부르면 돼.”곤란함이 지워진 얼굴에는 약간의 후회스러움과 또 약간의 후련함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 떠오르기엔 지나치게 복잡한 감정들이었다. 그 순간 사무엘의 눈에는 그녀가 다 자란 어른처럼 보였다. 어째서인지 앳된 얼굴에 자신 만큼, 어쩌면 자신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나무 그늘에 서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던 나뭇가지들이 바람결에 흔들리자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햇빛은 절묘하게 그녀의 머리 꼭대기를 비추었다. 그것이 마치 빛으로 구워 낸 왕관처럼 보였다. -“카호는 좋아하는 게 뭐야?”“여왕님이요.”“음. 좋아하는 장소는?”“여왕님이 계신 곳이라면 저는 어디든 좋습니다.”“으음. 그럼 좋아하는... 날씨는?”“비 내리기 하루 이틀 전의 맑은 날을 좋아합니다.”“응? 묘하게 구체적이네?”“여왕님과 처음 만난 날이 그러했으니까요.”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근미래 중국. 인민해방육군의 대테러 및 로봇 관련 강력 사건을 전담하는 특수 기동대―중안조(重案組). 중안조의 팀장 릉등운 소령은 과거의 사고로 로봇과 일할 수 없는 공황 증세를 앓고 있다. 그런 그의 팀에는 안드로이드가 배정되는 족족 ‘업무상’의 사고가 일어나고, 그 사고의 중심에는 늘 릉 소령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상부의 지시로 중안조에 최신형 브레인 타입 안드로이드가 배치된다. 게다가 이번에는 릉 소령에게 ‘무사고 1개월’이란 임무가 내려오는데……. “갑종 32식 전뇌형 기계병 일련번호 XBT-512087, 오늘부터 당신을 보좌합니다.” 사사건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고뭉치 최신형 안드로이드, 로봇이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는 까칠한 도시 군인. 두 남자(한 남자와 한 로봇)의 스펙터클한 동고동락이 시작된다. “소령님, 나는 당신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고 싶어요. 이 몸보다 따스한 무언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