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인생작이 될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가벼운 판타지들 중에서 뽑으라면 수작이 될 것은 확실하다. 중세보단 야만에 가까운 세계관과 개그 코드가 진입 장벽. 이를 넘을 수만 있다면 무리 없이 읽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좀비물을 비롯한 아포칼립스물에서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걸 뜻하겠지. 그 측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300화까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잘 맞는 사람에게는 인생작 중 하나가 될 것이요, 잘 맞지 않아도 그럭저럭 재밌게 볼만한 작품성 있는 수작.
평점 ★ ★ ★ ★ ★ 5/5 한 줄 평: 바바리안, 야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유로워지다. 장점: 사소한 인물들까지 신경 쓴 캐릭터성. 개연성.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 결말. 맥거핀 하나를 제외하면 소설의 모든 떡밥이 풀림. 단점: 후반부 전쟁 파트가 루즈하다는 평이 좀 있음. 인육 묘사 및 고문 묘사가 조금 있음. 하지만 고어라고 분류할 정도는 아님. (잔혹함을 강조하지 잔인한 묘사는 생각보다 적은 편.) 특이점: 히로인 없음. 사실상 먼치킨인 거 같지만 굳이 따지면 비먼치킨임. 밑은 찐스포이니 열람에 주의할 것. 제목에서 보이듯이, 주인공인 유릭은 야만전사이다. 최강의 전사인 유릭은 자유롭다. 유릭은 부족민들에게 대족장의 아들을 제쳐두고 차기 대족장 자리에 오를 정도의 신임을 얻고 있고, 고향의 여자들은 유릭의 씨를 받으려고 대기표를 뽑고 있다. 고작 곰 따위랑은 1 대 1을 떠서 이겨버릴 정도고, 심지어 한 번은 몸을 섞던 여자를 죽인 타 부족에 쳐들어가서 30명을 단신으로 학살한 적도 있다. 유릭을 막을 것은 그 드넓은 초원에 아무것도 없다. 하늘 산맥이라는 큰 벽을 빼면 말이다. 유릭은 타의에 의해 부족의 금기였던 하늘 산맥 위로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유릭은 그 타의를 자기 손으로 찢어버리고 나서, 스스로 산맥을 넘어가기로 선택한다. 산맥 너머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 있다는 걸 인지한 유릭에게, 더 이상 서부에서의 자유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릭은 제국의 황제가 자신의 부족민을 포함한 서부를 학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릭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제 산맥 너머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그동안 유기했던 부족민에 대한 의무가 그를 짓누른다. 그래서 유릭은 서부를 대통합한 뒤, 황제를 이겨낸다. 하지만 유릭은 황제나 다름 없는 자리에 오른 뒤 은거한다. 그 자리에 얽매이면 인생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얀키누스 황제가 그러했듯, 황제에 자리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헛된 것을 품으며 제국 전체를 구렁텅이로 처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점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초탈했는지, 신이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의탁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대사를 친다. 자유. 바바리안물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 자유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강인한 바바리안처럼 시원시원하게 앞에 있는 일을 해쳐나가는 것은 만인의 로망이다. 그런데 그 자유라는 걸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유릭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서부에서 자유로웠다. 30인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문명 세계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얀키누스 황제와 포를카나 왕국의 바르카 왕과 교류하는 사람이였으니, 아마 카르니우스 장군보다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 지위를 가졌음에도 얽매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는 대족장이 돼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전무후무한 공을 세운 전사다. 누군가에게 대족장 자리를 물려줬다면, 유릭은 아마 전사들에게 평생 존경을 받으며 살아갔을 거다. 얀키누스의 여인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말이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는 저 모든 시점의 유릭보다도, 마지막에 배 위에서 상처도 아물지 않은 채 씨익 웃어 보이는 유릭이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게 된다. 바바리안이라는 이름답게 유릭이라는 남자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사람 중, 초반부 유릭의 자유와 결말부 유릭의 자유를 같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인생에 놓여있는 선택지를 완전히 인지했을 때나 가능한 말이기에. 초반에 야만으로서 자유로웠던 유릭보다 결말에서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유릭이 훨씬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다. 유릭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유에도 크기가 있다는 것을 인생으로서 깨달았다. 그의 인생에 퀘스트가 있다면, 아마 하늘이 자신에게 허락한 자유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가보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겠지. 그래서일까. 유릭은 포를카나 왕국에서 친구와 아이와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자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배에 오른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나고, 많이 노쇠한 몸이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동부 대륙에 도착한 유릭에게는 또 어떤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까. 부디 유릭이 그 곳에서도 행복하게 날뛰고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높은 평점 리뷰
좀비물을 비롯한 아포칼립스물에서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걸 뜻하겠지. 그 측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300화까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잘 맞는 사람에게는 인생작 중 하나가 될 것이요, 잘 맞지 않아도 그럭저럭 재밌게 볼만한 작품성 있는 수작.
평점 ★ ★ ★ ★ ★ 5/5 한 줄 평: 바바리안, 야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유로워지다. 장점: 사소한 인물들까지 신경 쓴 캐릭터성. 개연성.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 결말. 맥거핀 하나를 제외하면 소설의 모든 떡밥이 풀림. 단점: 후반부 전쟁 파트가 루즈하다는 평이 좀 있음. 인육 묘사 및 고문 묘사가 조금 있음. 하지만 고어라고 분류할 정도는 아님. (잔혹함을 강조하지 잔인한 묘사는 생각보다 적은 편.) 특이점: 히로인 없음. 사실상 먼치킨인 거 같지만 굳이 따지면 비먼치킨임. 밑은 찐스포이니 열람에 주의할 것. 제목에서 보이듯이, 주인공인 유릭은 야만전사이다. 최강의 전사인 유릭은 자유롭다. 유릭은 부족민들에게 대족장의 아들을 제쳐두고 차기 대족장 자리에 오를 정도의 신임을 얻고 있고, 고향의 여자들은 유릭의 씨를 받으려고 대기표를 뽑고 있다. 고작 곰 따위랑은 1 대 1을 떠서 이겨버릴 정도고, 심지어 한 번은 몸을 섞던 여자를 죽인 타 부족에 쳐들어가서 30명을 단신으로 학살한 적도 있다. 유릭을 막을 것은 그 드넓은 초원에 아무것도 없다. 하늘 산맥이라는 큰 벽을 빼면 말이다. 유릭은 타의에 의해 부족의 금기였던 하늘 산맥 위로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유릭은 그 타의를 자기 손으로 찢어버리고 나서, 스스로 산맥을 넘어가기로 선택한다. 산맥 너머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 있다는 걸 인지한 유릭에게, 더 이상 서부에서의 자유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릭은 제국의 황제가 자신의 부족민을 포함한 서부를 학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릭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제 산맥 너머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그동안 유기했던 부족민에 대한 의무가 그를 짓누른다. 그래서 유릭은 서부를 대통합한 뒤, 황제를 이겨낸다. 하지만 유릭은 황제나 다름 없는 자리에 오른 뒤 은거한다. 그 자리에 얽매이면 인생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얀키누스 황제가 그러했듯, 황제에 자리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헛된 것을 품으며 제국 전체를 구렁텅이로 처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시점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초탈했는지, 신이란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의탁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대사를 친다. 자유. 바바리안물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 자유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강인한 바바리안처럼 시원시원하게 앞에 있는 일을 해쳐나가는 것은 만인의 로망이다. 그런데 그 자유라는 걸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유릭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서부에서 자유로웠다. 30인대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문명 세계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얀키누스 황제와 포를카나 왕국의 바르카 왕과 교류하는 사람이였으니, 아마 카르니우스 장군보다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 지위를 가졌음에도 얽매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는 대족장이 돼서도 자유로웠다. 그는 전무후무한 공을 세운 전사다. 누군가에게 대족장 자리를 물려줬다면, 유릭은 아마 전사들에게 평생 존경을 받으며 살아갔을 거다. 얀키누스의 여인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말이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우리는 저 모든 시점의 유릭보다도, 마지막에 배 위에서 상처도 아물지 않은 채 씨익 웃어 보이는 유릭이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게 된다. 바바리안이라는 이름답게 유릭이라는 남자는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사람 중, 초반부 유릭의 자유와 결말부 유릭의 자유를 같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인생에 놓여있는 선택지를 완전히 인지했을 때나 가능한 말이기에. 초반에 야만으로서 자유로웠던 유릭보다 결말에서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유릭이 훨씬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다. 유릭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유에도 크기가 있다는 것을 인생으로서 깨달았다. 그의 인생에 퀘스트가 있다면, 아마 하늘이 자신에게 허락한 자유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가보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겠지. 그래서일까. 유릭은 포를카나 왕국에서 친구와 아이와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한번 자기 자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배에 오른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가 나고, 많이 노쇠한 몸이지만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동부 대륙에 도착한 유릭에게는 또 어떤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까. 부디 유릭이 그 곳에서도 행복하게 날뛰고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누군가의 인생작이 될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가벼운 판타지들 중에서 뽑으라면 수작이 될 것은 확실하다. 중세보단 야만에 가까운 세계관과 개그 코드가 진입 장벽. 이를 넘을 수만 있다면 무리 없이 읽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