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잘못했어, 루시.” “아든 대공 전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난 그분의 딸이에요.” 엄마가 아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약혼자를 만나러 떠났다. 엄마를 괴롭히고 엄마의 능력만을 원했던 못된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대공 전하, 인사드립니다. 루시예요.” 나는 그렇게 여덟 살 생애 처음, 아버지를 만났다. *** “엄마가 다 나으면 나갈 거예요.” 아이는 이곳에 방문한 목적이 그것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허약한 아이셀을 데리고 나간다고? 네 엄마는 물론이고 너도 여기에서 못 나가.” 물론 나는 겨우 다시 만난 아이셀과 헤어질 생각은 없었다. 성질머리까지 나를 닮은 루시의 고집을 꺾기 위해 강하게 나가려 했는데. “아이, 원하지 않았잖아요. 저 싫어하잖아요.” 언젠가 했던 말이 루시의 입을 통해 내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정말이지, 아이는 저와 똑 닮았다.
"1년 간 쥐죽은 듯이 살아. 뭘 하려거나 나서지 말고." 짝사랑하던 남자와 계약 결혼하게 되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바로 그날이었다. 차라리 잘 된 거라고 여겼다. 볼품없는 내가 잠시뿐이나마 그의 아내가 되는 거니까. 1년간 얌전히 살다 조용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 약속대로 나는 영지에서 조용히 살았다. "나는 처음부터 널 엄마라고 생각 안 했어. 그러니까 꿈 깨." 그가 거둔 양자. 영지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나도 그 아이들의 어머니가 될 욕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니까. 하지만. "알아, 그런데 너네 밥은 먹었니?" 아이들 밥은 먹여야겠다. * 서서히 마지막을 준비했다. 내가 떠난 걸 알게 된 그가 미쳐 버리는지도 모르고.
형제를 죽이고 황위에 오른 클로이스.그가 황제가 되려 했던 것은 개인의 욕심이 아닌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노력도 헛되이 이기고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아내와 아이의 시체였다.그로부터 7년 후.그는 세상 어떤 일에도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그러하기에 7년만에 다시 열리는 영재원의 심사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한 장의 입학 신청서가 구겨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기 전 까지는.“입학 신청서인데 왜 버렸나?”“그것이, 조건이 무척이나 모자란 자가 낸 서류라서…….”제 아이를 영재원에 넣으려는 대신은 같잖은 변명을 대었다.단지 구빈원의 아이라는 이유로 검토되지도 못한 채, 쓰레기처럼 내던져진 서류.“이 아이의 입학을 허가한다.”딱히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었다.그저 멋대로 행동하려 하는 대신들을 향한 경고였을 뿐.그래서 제가 뽑은 아이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는데.“저는 이비 앨든이라고 해요.”아내와 딸의 무덤 앞에서 만난 아이는 언제나 그가 생각하던 제 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