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2.5 작품

잉그람의 등불
2.5 (1)

“저 아이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낮에 뜬 달처럼 창백하면서도 까마귀처럼 칠흑 같은 청년이 선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나는 그와 만났다. 세상의 끝, 바람의 무덤 앞에서. “이름이 어떻게 되니?” “아샤예요. 아샤 코냐크.” 그는 전능한 마법사였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소녀였다. 원래대로라면 조금도 그의 관심을 끌 리 없는. “저, 킬츠가 아는 누구를 닮았어요?” 그런 그가 나를 거둔 이유는 오로지 내 얼굴 위로 누군가를 겹쳐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지금도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흘러나온 목소리가 지독할 정도로 낮았다. 물이 고인 듯 침잠한 회색 눈동자에 빛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네 손목을 낚아챈 다음, 다시 집에 끌고 들어가 영원히 가둬 두고 싶을 정도로.”

유토피아
2.5 (1)

<유토피아> 서울대 추천 고교 필독서 100선 ‘유토피아’를 U-topia라고 적으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가 되지만, Eu-topia라고 적으면 유토피아는 ‘행복도시’가 된다. 희랍어로 ‘행복’을 나타내는 접두사가 바로 ‘eu-’다.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들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대가를 공평하게 분배받고, 사치하지 않으며 금과 은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나라, 악을 없애고 죄인을 구제하는 것이 형벌의 목적인 나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신실하게 신을 믿는 나라, 약자와 여성을 배려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소설 속 라파엘 휘틀러다이우스의 입을 빌려 말하는, 토머스 모어 자신이 꿈꾸는 이상 국가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당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쓴 8편의 서문을 비롯해 여러 가지 부속물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가히 지식의 향연이라 할 정도로 그 시대의 쟁쟁한 지식인들이 참여한 결과물이다. 책 중에서 하느님께서 살인을 금지하셨는데, 우리는 약간의 돈을 훔쳤다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요? 또한 만약 누군가 살인 금지의 계명을 해석하되, 인간이 만든 법률이 허용할 때는 가능하다고 해석한다면 다른 계명에 있어 강간, 간음과 거짓 증언을 이와 마찬가지로 해석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97쪽) 모든 남편들이 자신의 생활에서 안정감과 행복을 만끽하는 한편, 그의 모든 식솔들, 아내며 자식이며, 손자들, 증손자들과 고손자들이, 그리고 귀족 집안에서 바라마지 않는 길고 긴 가계도의 모든 후손들이 전부 그러합니다. 또한 실로 과거에 열심히 일하였으나 이제는 노동에 참여할 수 없는 노년들도 노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돌봄을 받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유토피아의 평등사회를, 다른 나라들에서 널리 적용되는 정의와 누가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254쪽)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는 분명 굉장히 학식이 높고 세상사에 관한 엄청난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가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구애 없이 털어놓는바, 그가 들려준 유토피아의 국가정체에는 우리 사회가 마음만으로 희망하는 것을 넘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으면 하고 꿈꾸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260쪽)

가짜 집착광공에게 집착하는 진짜들
3.6 (5)

‘집착광공을 연기하는 BL 소설 속 남장 공작.’이 평범치 않은 문장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르윈 드 베르웬.소드마스터, 출중한 외모, 권세 높은 공작가의 주인.완벽해 보이는 그에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남장 여자라는 것!그러던 어느 날, 물에 빠진 후 미친 황녀가 그녀에게 말한다.“언니가 가짜 집착 광공이 되어 주세요!”여기는 피폐 BL 소설 속이니, 세계 멸망을 피하기 위해 원작의 집착광공 대신 수를 꼬셔 달란다.그래서 계획대로 집착광공을 연기해 수를 꼬셨다. 그런데…….“사랑하는 척이라도 하세요. 안 그러면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을 거 같거든.”내가 꼬시고 차 버린 ‘수’는 신제국의 황제가 되어 돌아왔고.“그대를 갖기 위해선 뭘 해야 하나? 전쟁? 학살?”원작의 ‘집착광공1’인 적국 황제는 정말 미친놈이고.“너의 입맞춤 한 번에 난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어. 이 심장도, 이 제국도.”순진한 줄만 알았던 소꿉친구는 사실 원작의 ‘집착광공2’란다.왜인지 찐 집착광공들이 내게 세상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