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네 애를 키우는 꼴을 볼 수 있어? 나는 너랑 결혼 안 해. 애만 낳을 거야, 임신을 위한 계약을 하고 싶다는 뜻이지.” 빈말이라도, 거짓이라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이런 계약서는 들이밀지 않았을 것이다. * * * 못된 오빠 친구, 차도원. 연우의 첫사랑이자, 처음으로 간절하게 욕심냈던 남자였다. 업둥이로 길러진 연우에게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존재하는 그를 원했다. 7년 전, 아픈 첫사랑을 끝으로 완벽하게 그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남자 없고, 너는 나랑 하는 거 환장하고. 우린 7년 전에도 잘 맞았던 몸이고. 뭐 문제 있어?” “한 번 자 주면 되겠어요?” “그동안 부실한 새끼들하고만 붙어먹어서 그런가? 어디서 한 번 같은 하찮은 소리를 내뱉지, 불쾌하게?” 온몸으로 그를 거부했지만, 끝내 찾아가서 매달렸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사귀는 것도 괜찮고… 7년 전처럼 나를 안아도 상관없어요.” “아이가 생길 때까지, 나랑 이 짓을 해야 할 거야.” 비참하게 나에게 온 너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버리기 위해. “넌 나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달아나는 것도, 외면하는 것도, 숨는 것도 절대 허락 안 해.” 사랑스러운 갑과 사악한 을의 치명적인 내적 교합 <임신 계약서>
“마음이 바뀌었어. 내 새끼가 필요해. 아이를 낳아줬으면 하는데?” 싸늘하게 선을 그을 때도 남자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날 이후 완벽한 피임이 철저한 임신으로 바뀌었다. *** 아버지의 정계 진출 야망을 위해 결혼 시장에 던져진 서윤. 잔혹한 포식자 같은 남자, 차도건을 만난다. 그는 청혼이 아니라 단순한 아내 계약만 요구하고… “계약기간은 3년, 생각하기 나름인데. 그저 그런 새끼들 만나고 싸돌아다녀봐야, 나랑 살다가 이혼해서 차도건의 전 부인이 되는 편이 앞으로 네 인생에서 훨씬 남는 장사야.” 밤마다 지독하게 몰아붙이는 부부관계, 일상에서는 남들과 비슷한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그래, 육체적 쾌락일 뿐. 서윤은 3년 동안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혼해 줄게. 결혼 완료금까지 쳐서.” 도건은 아내가 내민 이혼 서류를 산뜻하게 받아들였다, 겉으로는. 누구 마음대로 이혼이야? 목을 부러뜨릴까, 다신 그런 소리를 입에 담지 못하도록. 아니면 발목을 꺾을까, 내 허락 없이 감히 떠난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곁에서 얌전히 입 다물고 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칠 줄도 알고. 이혼할 생각이 없는 사악한 남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내를 궁지로 몰아놓고서 곁에 두려고 한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이혼은 없다는 단서까지 걸고. “이혼 선물로 주세요. 당신과 상관없는… 내 아기를.” “많이 컸어. 그래도 벌은 받아야겠지? 예뻐도 혼나야 해, 넌.”
※ 본 소설은 강압적 및 임신 중 성관계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아기를 낳으면 저를 보내 주세요. 제발요.”류화진은 조폭 출신 사업가 권현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막대한 재산과 결혼, 그리고 임신.현호는 원만한 기업 합병을 위한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화진을 임신시켰다.“품에 안아 보지도 않을게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게요.”감금된 화진이 나체로 빌며 현호에게 무릎을 꿇었다.불륜 관계인 정부보다 비참한 본처가 여기 있었다.그녀는 배 속의 아기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다.절반은 자신의 피가 섞인 아이인데 권현호의 씨받이가 됐다는 사실이 징그러웠다.“그래도 엄마라면 애한테 모유 수유는 해야지.”화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아기만… 낳으면 끝일 줄 알았다.“모유 수유하는 동안은 임신이 안 된다던데.”“…….”“피임하고 싶으면 제대로 젖을 물려. 둘째 생기기 전에.”현호가 그녀의 가슴을 짜 대자, 사방팔방 젖이 튀었다.막혔던 젖샘이 돌아서인지 분무기라도 뿌린 것처럼 모유로 바닥이 젖었다.가축에 암소 취급이었지만 화진은 이미 여덟 달을 버텼다.이제 남은 기간은 1년 2개월.그가 채운 임신이라는 족쇄가 지나치게 무거워 아기는 버리고만 싶었다.
“난 사랑이 뭔지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 “후회 안 할 자신 있습니까?” “…….” “이대로 회사를 그만두어도.” 유신 그룹의 후계자 차유신을 곁에서 보필하던 한낱 비서. 윤지안은 그저 그뿐이었다. 아니, 그뿐이었어야만 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아요. 싫어하는 거 알지 않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일 만큼. 취향에서부터 사소한 버릇 하나까지. 어쩌면 그 자신보다 그녀가 더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삶이 온통 그로 가득해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야만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 도망쳤다. 그러나……. “내 아입니까?” 배 속에 품은 생명은 다시 유신을 지안의 앞에 데려다 놓았다.
“숨바꼭질하자고 도망쳐 놓고, 막상 찾아 주니 떨고 있는 거면 그거대로 별론데.”도훤이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어르듯 우아하게 말을 이었다.언니를 대신해 행했던 대리 결혼.그는 우아하지만 잔악무도한 남자였다.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됐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아이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저도 아이도 죽은 목숨일 게 빤해, 그를 완벽히 속여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제가 도망친 지 열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제 앞에 나타났다.이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아이의 존재를, 그게 아니라면 아이가 그의 아이라는 걸 감추는 것.“그래서, 애 아빠가 누구지?”“적어도 도훤 씨 애는 아니에요. 알잖아요?”그러자 그는 도리어 재밌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싸늘하고 아름답고, 우아하게.동시에 갈증을 느끼는, 식욕에 부푼 지독한 소유욕으로 광기가 어린 눈이 그녀를 옥죄기 시작한다.그 시선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챈 그녀는 덜컥 두려움이 차올라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가 달달 떨린다.그녀는 감히 도망칠 생각도 할 수 없었다.“이제 정말 너를 내 아내처럼 생각하고 옆에다 두고 챙겨야지. 봐서 밥도 먹이고, 몸도 씻기고, 성욕도 채워 주고, 어디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려 다른 남자한테 안기지 못하도록. 목줄이라도 달아 놓으려고.”이미 그에게 이유원이 아니라, 이서아라는 것을 들킨 순간부터.그가 그녀는 달아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한 순간부터.“걱정 마. 아이한테 지금 너의 안에 각인을 새기는 게 나라고 몇 번이고 알려 줄 테니까.”나른한 바람처럼 풍기는 그의 말은, 제가 만족할 때까지 서아를 제 밑에 붙들어 놓겠다는 지독한 의미였다.
세계그룹의 입양 딸이지만 친딸처럼 키워진 윤가은. 지도준과의 사랑이 없는 끔찍한 계약 결혼 생활 중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을 하기 전 그녀는 결혼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그와 첫날밤을 보낸다. 그렇게 그녀에게 아기가 찾아오고, 떠나려던 그녀는 자신이 세계그룹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바보같이 윤 회장은 아직도 윤가은이 제 핏줄인 걸 몰라. 지 앞에 버젓이 지 핏줄이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계속 눈에 거슬렸는데, 차라리 잘 됐어. 지방에 출장 가면 교통사고로 위장해 이참에 죽여버리지 뭐. 예전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일이잖아.” 가은은 저의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저를 죽이려 했던 새어머니 이윤숙과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괴롭힌 친아버지 윤기철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는 제 아기를 지키기 위해 기억을 잃은 척 연기하며 지도준과 이혼하고 제 아기를 지키려 했는데……. “내 옆에서 평생 내 아기를 키우면서 살아. 이혼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당신은 계속 도망가. 난 계속 잡으러 갈 테니까.” 이 남자, 순순히 이혼해줄 것 같지 않다.
임신을 하게 되면 곧바로 최이준과 이혼해야 했다. 그게 우리의 계약이었고, 수진이 원하는 것이었다. “다행이지. 계약서에 아이의 양육권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으니까.” 그런데 수진에게는 관심조차 없던 이준이 아이를 빌미로 발목을 붙잡았다. “내 아이예요. 절대 당신한테 양보 못 해요.” “같이 키워. 아빠 노릇, 제대로 해 줄 테니까.” “당신 도움 바라지도 않아요. 내가 바라는 건 이혼 하나밖에 없어요.” 이준의 시선은 지독하리만치 옭아맸고, 끊어낼 수 없을 만큼 질겼다. 벗어나려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면 도로 끌려갈 것만 같았다. “그럼 우리 아이는 엄마 없이 자라게 되겠네.” 애초에 그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넌 내 여자니까, 네 배 속의 그 아이도 내 아이야.>정확히 두 줄의 빨간 선이었다. 임신이었다.하지만, 상대는 회사 상사이자 곧 의붓오빠가 될 지서훤.“넌 내 동생이 될 수 없어.”“하지만 우리 이래선 안 되는…….”순간 서훤의 눈에 진한 소유욕이 번졌다.“넌 영원히 내 여자니까.”규영은 그에게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단단한 남자의 팔에 결박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그만하자 이런 헛소리 할 생각 하지 말고.”시작할 때부터 끝내야 했다고 다짐했던 관계.아이를 빌미로 그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그에게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난 네가 누구 애를 임신했든 누굴 사랑하든 상관없어.”천천히 손에 힘을 줘 규영의 눈이 저를 향하게 했다.규영이 시선을 돌리려 하자 서훤이 그녀의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 채 끝끝내 자신을 보게 했다.“이제 너 도망가지 못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서훤이 턱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자 규영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서훤의 아랫입술에 가까워졌다.
“누구 애를 가져서 이렇게 앙칼지게 구는 걸까.”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뱃속엔 그의 아이를 가진 채로. “말 안 듣는 애완동물을 풀어 주는 멍청한 주인이 아니라는 거, 이제 알 때 됐잖아.” 하지만 도주는 허망하게 끝나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구속한다. “우리 도혜가 또 어떤 남자를 후리려고 여기까지 온 걸까.” “이거, 제발 놔줘요…….” 옭아매는 목소리가, 지독히도 위험했다. 배를 뭉근히 문지르는 손길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우리 도혜는 벌 받는 걸 좋아하지. 누구 애새끼를 밴 건지는 그때 들어도 충분할 거야.” ***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사람 목만 아니면 다 가져다주지.” 강혁이 도혜에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통보했다. 뻣뻣하게 굳은 도혜가 강혁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도혜를 가득 담곤, 그녀의 질문과 관련 없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 사람 목이라도 가능하려나.”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잖아요!” 도혜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날카롭게 찢어졌다. 두려움이 담긴 목소리에, 강혁이 도혜의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았다. 소름 끼치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이해가 안 되나? 여기서 안락하게 평생 사는 거야. 나만을 기다리면서.”
“값어치 없는 자존심 세울 바에 도와달라고 빌어. 그게 더 귀엽겠네.” 재앙의 군림자. 연서에게 우태헌은 그랬다. 세원 그룹 상주 간병인으로 일하던 연서는 예기치 못하게 우태헌 이사의 개인 비서가 되었다. 사랑이 화마처럼 덮쳐왔다. 뜨겁고 강렬해 피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상처받을 걸 뻔히 알면서 가난한 사랑을 시작했다. 그러나 숨 쉬고 싶어서, 혼자만의 사랑이 버거워서 도망을 택했다. 배 속에 태헌의 생명을 품은 줄 모르고. *** 한 달 넘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연서가 바로 태헌의 앞에 있었다. 몇 걸음 안에, 곧 닿을 거리에. 머릿결이 물결처럼 하늘거리는 한연서. 예쁘게 눈을 휘어 웃는 한연서. “네 입으로 내 아이라고 말해주면 안 될까.” “우리 헤어졌고, 빚은 다 갚았어요. 이렇게 다시 보는 거 껄끄러워요.” 어둑한 지하에 남은 불온한 죄인이 되었다. 심장이 조각조각 갈리는 것처럼 흉통이 일었다.
“벗어. 한서인.” 바닷물에 흠뻑 젖은 원피스 위로 남자의 커다란 손이 닿았다. 오래된 상처가 쓰라리며 욱신거렸다. “태주 씨. 나랑 결혼해 주세요.”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는 물러설 곳 없었던 서인의 모든 것을 내건 청혼이었다. “지켜 줘야 할 여자가 있어.” 죽은 형의 약혼녀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지워. 그게 우리 결혼의 조건이야.” 순종할 아내가 필요했던 태산 그룹의 차남, 황태주. “약속해요. 당신이 원하는 아내가 될게요.”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외에는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던 한서인. “서인아.” 그녀의 상처 위로 태주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갔다. “오늘은 손은 쓰지 마.” 그녀의 양손을 포박하듯 위로 올리며 태주가 못되게 웃었다. 마치 장난감처럼 서인을 가지고 놀면서 가끔은 지나치게 다정하고 그래서 더 잔인했던 남자를 사랑했다. “태주 씨. 여기에 더 이상 내 자리는 없어요.” “서인아. 내가 너를 살린 그 순간부터 너는 내 거였어.”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서인의 사랑을 원하는 이기적인 남자. 처음부터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일그러진 결혼 생활이었다. 가쁘게 조여 오는 그의 집착은 서인에게 시한부 결혼의 종지부를 찍게 했다. 도망쳐야 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태주 씨의 아내 역할은 이제 지긋지긋해요.” “시작은 네 뜻대로였지만, 이 결혼에 끝은 없어.” 황태주에게 이 결혼은 평생의 약속이었다. 어그러질지라도, 혹은 어그러졌을지라도. 거짓일지라도 한서인은 사랑한다고 속삭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도와주세요. 제가, 전무님 곁에서 사라질 수 있게.” “방금. 뭐라고 했어요?” 어이없어하는 상대를 보면서도 해윤은 덤덤했다. “저, 임신했어요. 차도언 씨 아이예요.” 기어이 폭탄을 터트렸다. 몇 달 뒤 태어날 아이를 위한 보험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제가 전무님 발목 잡을 일 없게.”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다시 나타난 순간, 모든 게 소용없어졌다. 필요했던 보험도. 벗어나려 발버둥 쳤던 제 노력도. * * * “제법이야.” 낮고 차분한 음색에 해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내 뒤통수치고 등잔 밑에 숨을 줄도 알고.” “……전무님.” “근데 어쩌나, 숨바꼭질이 끝나 버려서.”
“한설연이 나한테서 도망가려고 했어?” 보잘것없는 그녀의 남편 가연 그룹 전무, 사이한. 제 구세주라고 믿었던 그는, 결혼 후 저를 여유롭게 옭아매기 시작했다. 사랑만으로 그를 버텨 내던 설연은 모두 바닥나 버렸다. “우리, 이혼해요.” “왜, 이혼하고 싶은데.” 이한은 설연의 진심을 한껏 비웃었다. 그리고 설연은 간과했다. 우아한 그의 가면 뒤에 숨겨진 무자비하고 비틀린 욕정을. “난 그런 모습을 더 좋아해서. 말로는 끔찍하다고 하면서, 밑에선 좋다고 어쩔 줄 모르는 모습.” “그러니, 한번 도망가 봐. 나 없이는 먹지도, 씻지도 아무것도 못 하게 할 테니까.” 그럼에도 설연은 도망쳐야 했다. 그는 아이를 원하지 않으니까. * 그가 우악스럽게 그녀의 턱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몸이 달달 떨렸다. 그녀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던 그가 한순간에 그전보다 더 흉포해졌다. 그가 다시 그녀의 눈을 맞추며 나긋하게 물었다. “……한설연.” 그런 그의 목소리에 흥분이 자욱했다. “그렇게 아이가 갖고 싶어?” 삐걱대는 음성에 비소가 섞여 들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왈칵 고여 들었다. 저를 짓궂게 대하고자 이 상황에 이런 말을 던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 아이 갖자. 종일 몇 번이고 하다 보면 언젠간 생기지 않겠어?” 그런 그의 눈에는 비정상적인 욕정이 감돌고 있었다.
5년을 함께한 약혼자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 “좀 잘하지 그랬어, 언니. 만나는 남자마다 언니한테 불만이 많네. 뭔가 이상 있는 거 아냐?” 그 상대는 그녀의 이복동생. “우리 관계 재미없고, 지루하게 만든 건 너야.” 가면을 벗고 뻔뻔한 낯을 드러낸 약혼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정이서는 충동적으로 하룻밤 일탈을 선택한다. “서로 잘 알고 따라온 거 아니었어요? 아예 모르는 사람과 뒹굴기엔 그리 어리지 않잖아요.” 묵직한 우드 향, 검은 눈동자. 그녀를 다 덮은 남자의 몸 아래 이서는 형편없이 휩쓸렸다. “우리 가끔 만납시다. 내키면 잠도 자고.” 피라미드의 최상층 한제그룹의 후계자, 권도해. 차갑고 무뚝뚝한 그 남자가 이서 앞에서는 달라진다. “상무님, 아이 아닙니다.” “정이서 씨 아이니까. 내 아이기도 하지.” 도망치고, 도망쳐도 결국엔 권도해의 품속이었다. 정이서의 마음, 정이서의 아이, 정이서의 삶. 어느 것 하나 권도해는 포기할 생각이 없다.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잖아.” 재우 그룹 전략 기획팀 전무, 강사헌. 우아한 가면 아래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남자였다. 하연은 그런 그의 비서일 뿐만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그와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섞어야 하는 장난감. 사헌의 약혼 소식에 관계의 끝을 예감하지만. “키스해 봐, 여기서.” 하연은 간과했다. 그는 결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거란 걸. 그는 장소 불문 남 신경을 쓰지 않는 지독한 나쁜 남자라는 걸. “그러게. 적당히 입고 오지 그랬어. 야해 빠져서는.” “소리 내면 밖에 다 들릴 텐데.” 그를 짝사랑하던 하연에게 그의 행동은 점점 더 버거워졌다. 어서 강사헌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설상가상 임신까지 하게 되는데……. “정말 임신이네. 그래서 튀려고 했던 거고.” 산부인과 앞에서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강사헌 전무였다. 그가 임신을 알아챈 순간, 하연의 눈앞은 새하얘지고, 절망으로 뒤덮였다.
“결혼합시다, 애도 생겼는데.” 최악의 남자와 결혼을 종용받는 상황에서 벌인 단 하룻밤의 일탈. 그 결과가 임신일 줄은 몰랐다. 극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나타난 차악의 남자. 과연 이 남자와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 * * “…죄송합니다.” “뭐가요. 강이서 씨가 날 벗겨 먹은 거?” 양 볼이 달아오른 이서가 어이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토낀 거?” “아뇨. 제가 사죄드리고 싶은 건, 결과예요. 일이 이렇게 돼 버려서…….” “피임약을 정말 먹고 있었던 건 맞고?” “네. 의사 말로는,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단순 사고였다.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러니 감정을 앞세워 흥분해 봤자 좋을 건 없었다. “한태주 씨가 지금 얼마나 황당하고 놀라셨을지 짐작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만 믿고 한태주 씨가…….” “마음껏 갈겨 댔다?” 아, 진짜. 이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꼬맹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제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랑 이렇게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말이야.” 흥분으로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를 들으며 하연은 설핏 웃었다. 새빨간 거짓말을, 그는 믿고 있었다. 아마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그 꼬맹이의 아빠는,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내 아이를 낳아.” 짐승의 덫에 걸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엔, 이미 늦었다. 야만적인 포식자는 하연을 무섭게 옥죄어 올 뿐이다. “그 꼬맹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는 거야.” 검은 눈동자 속엔 오직 하연만이 가득했다. 비틀린 집착으로, 무자비한 욕망으로.
“세손을 품은 몸으로 감히, 내게서 도망을 쳤다?” 석은 소화의 깡마른 어깨를 그러쥐었다. 소화는 왕세자의 아이를 가진 채로 그에게서 도망쳤다. 그녀에게 찾아온,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열흘도 되지 않아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세손이라뇨, 오해십니다. 저하.” 흉통이 일만큼 그리웠던 얼굴을 마주하니, 이것은 다행일까. 아니면 불행의 시작일까. “이제 더는 저하의 곁에 머물 수 없는 몸입니다. 차라리 죽여 주시옵소서.” 뱉어낸 거짓은 석의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언제나 다정하고 선하기만 하던 그의 눈에 일순, 깊은 원망과 증오가 일렁거렸다. 서늘한 냉기에 소화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움켜쥐었는데. “그래, 죽여주마.” “……!” “다만,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온 후 네 소원대로 죽여줄 것이다. 그때까진.” 왕세자는 아랫배를 움켜쥔 그녀의 마른 손목을 옥죄었다. 그러곤 소화를 휙, 당겨 그녀의 귓가에 낮은 음성으로 뇌까렸다. “닥치고 내 옆에서 죽은 듯이 살아, 소화야.” 유독 비가 잦게 내리는 봄이었다. 《왕세자의 아이를 가졌다》
“정 아이를 갖고 싶은 거라면 입양을 해. 아니면 다른 자식이랑 붙어서 애를 낳아오든가. 그런 거라면 나도 동의하지.” 서연은 그저 갖고 싶을 뿐이었다. 그를 닮고 그녀를 닮은 ‘우리’의 아이를. 그렇게 하게 된 우연한 임신. 하지만 강혁은 제 아이가 아니라며 부정하는데…… “우리 차라리 이혼해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서연은 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만, 그는 외려 서연에 대한 흉포한 집착을 시작한다. “지금 당신 배 속에 있는 아이는 상관없어. 앞으로 당신이 내 애를 가질 때까지 매일매일 안을 테니까.” 그건 강혁의 선전포고였다. “그러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하지 마. 피하지도 말고.” 죽어도 제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혁의 눈빛이 서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그렇지만 너무나 소중해 가슴속에 늘 머물러 기웃거리던 조용한 그림자.“나 다 기억이 났어.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왜 헤어졌는지.”울먹이는 서우를 향해 도진이 다가와 지그시 뺨을 감쌌다.그토록 원했던 말, 꿈에도 그리던 간절한 순간을 마주하자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사랑스러운 그녀가 자신 앞에 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것 같았다.서우의 눈동자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삼킬 듯 다가가자 그녀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그런데 오빠, 우리 아이는 어디에 있어?”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우리에게 아이가 있었어?열정이 가득했던 그들의 밤이 남긴 건 추억뿐만이 아니었던 것일까?기억을 되찾은 그녀의 말에 그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소용돌이를 느꼈다.
온몸의 피가 수런거렸다. 끓어오르는 가슴이 참담했다. 이를테면, 감정의 모욕이고 기만이며 일종의 몰염치였다. 상사인 자신의 아기를 낳아 버려둔 채 홀연히 사라진 비서가 4년 만에 다시 나타났다. “내 손아귀에 움켜쥐고 다시는 안 놔줘. 너도 나만큼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게 만들거니까.” 심히 원수처럼 보는 냉혹한 눈빛과 무정한 비소에도 지난 여느 때처럼 다부진 표정이, 그 대담한 눈동자가 그러했다. ‘더는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요. 망각 된 상처보다 더한 시련은 없을 테니까.’ 결혼을 약속한 여자에게서 뜻밖의 이별을 통고받아야 했던 남자, 한신헌. 핏덩이를 빼앗기고 비운의 사고로 기억과 목소리마저 잃은 여자, 서다연. 그예 필연처럼, 오해로 뒤얽힌 사내의 애증 어린 집착. 그녀가 잊어버린 연인이자 갑을 관계 사이엔 두 사람을 쏙 빼닮은 사랑스러운 아이가 존재했다. <2023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로맨스 우수상 수상작>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살아 있었다. 그것도 버젓이 내 곁에. “이래서 부모 없이 자라면 안 돼. 저러니 애 아빠도 없이 애를 낳지, 안 그래?”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은 괜찮았다. 혼자였어도 희망이를 품은 열 달은 행복했으니까. 아이를 사산한 후, 연수는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 아빠인 문선재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5년 전 헤어진 연인한테 이러는 문선재 씨도 정상은 아니에요.” “알지. 생전 안 하던 짓을 할 정도로 정신없는 새끼인데,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린 연수에게 손을 내미는 선재. “형편없는 새끼들 만나고 다닐 거면 차라리 다시 만나자고 해.” “…….” “나한테.” 구원의 손길임을 알면서도 잡을 수 없었다. 죽은 아이의 아빠였으니까. 밀어내는 게 최선이라 믿었다. 아이가 살아 있는 걸 알기 전까지는. “고작 그런 이유로… 그 자리가 그렇게 탐나서, 내 아이를 빼앗았어?” 가족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아이를 빼돌렸다는 걸 알았을 때, 연수는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살아야겠다. 강해져야 한다. 아이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지키기 위해서라면. “문선재 씨.” 이 몸이 불타는 한이 있어도 지옥을 기어서라도. “아이가 있어요. 당신하고, 나에게.” 당신의 세계로 가야겠다.
“내 아이라도 가지고 싶었던 거야?” CN그룹의 우월한 핏줄을 전신에 둘렀어도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황태자, 윤도재. 2년간의 시한부 결혼은 서로에게 나쁠 게 없는 조건이었다. “아이를 지우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 “임신은 확실해?” “네.” “다시 묻지. 내 아이는 확실해?” 아이는 가지지 말 것. 서로 사랑하지 말 것. “쥐 죽은 듯이.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도재 씨조차 찾을 수 없게 숨어서 살게요.” “누구 마음대로. 만에 하나라도 내 씨가 맞다면 잘 숨겼어야지.” “이혼해요.” “난 계약 파기할 생각 따위 없어. 이 집에서 도망칠 거라면 서로 힘 빼지 말자고 얘기해 주는 거야.” 순진하게 믿었다. 자신은 몰라도 아이만은 그의 자식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너무도 큰 착각이었다. “우리 아이는, 형의 아이로 자랄 거야.” “절대 안 돼요!” “아이는 또 가지면 돼.” 그의 옆은 변함없이 늪이었다. 발을 디딘 순간 천천히 빠져들어 숨통을 조이고 결국 끊어 놓는. “도재 씨도 내가 느낀 고통을 똑같이 느껴 봐.” 그보다도 더.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 어떠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