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교수님.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술실로 향하던 태준이 코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소리치는 서현을 향해 뒤로 휙 돌아섰다. 뚜벅뚜벅, 두 걸음 만에 당도한 태준이 고압적인 자세로 그녀의 가운에 쓰여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지운 얼굴로 서현에게 상체를 기울였다. “응급의학과 이서현 선생, 할 일 끝났으면 적당히 빠져. 설쳐대지 말고.” 태준의 느긋하고 고저 없는 일격에 서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대체 이 남자, 입에 칼이라도 달린 건가? 서현은 부들부들 떨리는 고개를 간신히 들어 올려 태준을 쳐다보았다. 수려한 외모, 넘사벽인 피지컬, 거기에 더해 명산의료재단 이사장의 손자, 서울 본원 원장의 아들, 국내에서 손꼽히는 흉부외과 의사인 박태준, 이 남자와의 첫 만남은 이토록 강렬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인생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 단 한 번의 실수로 지방으로 좌천당한 박태준,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만난 응급의학과 의사 이서현. 우연이 연속되면 인연이라 하더니, 단 하나도 맞을 것 같지 않던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아슬아슬 줄타기하게 되었다. “나는 너인 것 같은데.” 태준의 눈빛은 맹렬한 짐승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이래도?” 태준의 몸이 한층 압박하듯 맞닿았고, 머리 위로 부여잡은 손목에도 더 힘이 들어갔다. 서현은 망설였다. 정말 이 남자 사랑해도 될까? 동료 의사에서 절절한 연인까지 박태준과 이서현은 그 아찔한 여정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