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력들이 전부 헛수고라면?] "노력은 보상을 담보하지 못한다. 세월이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듯..." 매일 열 여섯 시간씩 연습했다. 퇴근 후에도 자발적으로. 그 연습비에 90만원 밖에 안되는 월급의 4분의 1을 털어 넣었다. 덕분에 매일 라면과 무말랭이만 먹고 있다. 하지만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 레벨업은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연습하더라 해도,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지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미칠 지경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수만명의 선배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자기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불안해지고 만다. 이 모든 노력이 결국 시간 낭비로 끝날까 봐. 지난 4년동안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결국 실패했던 것처럼... 모든 노력에는 보답이 있어야 한다. 노력한 자신에겐 승리할 권리, 그리하여 모두에게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 처참하게 패배했다. 평소에 연습도 전혀 안하던, 그래서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인간에게… ‘게임4판타지’의 조연, 이미리의 이야기다. ----------------------------------------------------------- 검미성 작가의 ‘게임 4 판타지’는 패배자들의 이야기다. 뼈를 깍는 노력.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보상... 그들은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래서 판타지임에도 비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린 모두 노력했지만 보상받지 못한 경험이 있으니까. ---------------------------------------------------------- 주인공 가온은 동료들과 이세계로 떠난다. 전쟁에서 하염없이 밀리고만 있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시간의 흐름이 다른,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세계에서 200년동안이나 괴물들과 싸우며 죽어나간다.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믿었다.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낸 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들은 영웅이 되어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그러지 못했다. 반신이자 소드마스터가 되어 돌아왔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나있었다. 조국은 혁명이 일어나 사라졌고 동족이던 왕족들은 처형당했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자매들은 더럽혀지기 전에 하이엘프 하고에게 ‘안락사’당한다. 복수할 대상이 너무나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가온은 우선 하고를 찾아간다. 복수는 실패한다. 가온은 처참하게 패배한다. 그것도 세번이나. 치욕적인 패배의 순간. 200년 동안 갈고 닦아온 모든 기술과 신념이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동료들을 잃어가며 버틴 200년. 세상에 10명도 없는 소드마스터가 되어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다. 자신은 눈 앞의 원수 하나도 벨 수 없었다. 기껏 소드마스터가 되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무기력, 끔찍한 무기력이 몸을 감싼다. 가온은 이것이 영웅 서사가 아니었음을 생각한다. 시련은 있었으나 영광은 없었다. 시련만이 계속되다 시련으로 끝나버렸다. 가온은 방 안에 홀로 틀어박힌다. 수십년동안. 그리고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속에서 그는 칭송을 갈구한다.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들을... 그 모습은 의도적으로 찌질하게 표현된다. 이복동은 중졸이요 편돌이였다가 이제 쌀먹충이 되었다. 이 게임에서 한몫 단단히 잡고 싶다. 그래서 미래 걱정을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현실의 능력치가 반영되는 가상현실게임이다. 돈을 벌려면 몇 년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게임이 얼마나 갈 지도 모르는데 몇 년이나 훈련을 해야한다고? 그것도 현실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총이나 쏘는 연습을? 우연히 주인공 가온과 연이 닿아서 쉽게 돈을 벌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이 운이 언제까지 갈 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감에 저도 모르게 말한 인생상담. 그곳에서 돌아온 것은 팩트 폭행이다. “이 게임 끝나면 생활이 막막해요? 전공이나 자격증 없나요?” “예…” “복동 씨 드래곤이에요? 그래서 세월이 성장을 담보하나요?” “예?” “나이 먹기만 하면 커지고 세지고 그러냐고요. 이대로 시간 흐르면 에인션트 이복동 되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니죠, 인간이니까…….” “그럼 뭐라도 해요. 자격증 습득이든 사격연습이든 간에.” 자극을 받은 나머지 연습을 시작한다. 첫날엔 6시간, 그 다음날엔 4시간. 그리고 다다음날엔 지쳐서 아무것도 못했다. 이복동은 자신의 한계에 절망한다. 역시 자신에게 그런 집중력과 끈기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패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극을 받고 결국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온은 곧 일어날 전쟁을 막겠다고 사람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것을 본다. 전재산을 기부하는 사람, 사후세계를 포기하고 지옥에 떨어지길 각오하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하지만 가온은 내부자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의 노력이 허무로 돌아갈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과거가 곂쳐보이기에 그것은 너무나 괴롭다. 가온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헛된 일임을 설득하며, 도움요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움을 요청한 이미리의 말에 바뀐다. 이미리는 소용이 없어도 되니까 도와달라고 한다. 패배해도 좋다. 그러니 도와줘. 그냥, 빨리 다 끝내고 집어치우게…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들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좀 그만할 수 있도록... 가온은 깨닫는다. 자신이 걱정했던 것들, 그것들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에겐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너무 오래 어두운 집에 박혀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패배와 굴욕은 너무 견디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에, 한 젊은이의 인생을 집어삼켜버렸다. 하지만 계속 요새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가온은 결단을 내린다. 암울했던 과거와 작별하고, 일찍이 끝내야 하는 일을 늦게나마 깔끔하게 끝내기로 결정한다. 이복동은 불안감에 시달리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에 결국 훈련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겨우 2시간씩 했지만, 이제는 6시간씩 버티고 있다. 자기에게 이런 힘이 있었는지 놀랍다. 이런 연습이 전부 무용지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 그리고 현실에서는 쓸모도 없는 일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훈련을 계속한다. 훈련에 성과가 보인다. 몇 달간의 훈련으로 실력은 좋아졌고, 프로게이머 랭커(프로 쌀숭이)로 1인분을 휼륭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곧 사라져버릴 게임이지만... 그러나 그는 이 분투가 인생에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워낙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으니. 고작 게임에서의 활약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일보다 가치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소드마스터, 총알마저 베어낼 수 있는 초인들. 그를 상대로 저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행운과 지금까지 해온 훈련이 만든 기적이다. 다시 반복되기 어려운… 결국 게임이 사라지고 나서, 이복동은 다시 백수가 된다. 그러나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던 일들… 그는 결국 정규직 자리를 얻어낸다. 이미리는 가온에게 위로를 듣는다. 사실 가온은 별 생각없이 지나가며 던진 말이었다. 정말로 작은 친절.... 하지만 이미리가 목표로 하던 소드마스터의 그 한마디, 실력이 괜찮다고 한 그 한마디가 사람을 바꾼다. 일찍이 그녀는 젊은 인생에 너무 빨리 연속적인 실패를 겪었다. 사 년을 퍼부은 공무원 시험은 시간 낭비로 끝났다. 국가 프로젝트에서는 누구보다 노력했음에도 뒤쳐졌다. 이 모든 것이 또 거창한 시간낭비로 끝날 것이란 예감이 든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고 체념한 그 시점에... 우연히도 만난 소드마스터가 칭찬 한마디를 건냈다. 칭찬한 사람이 너무나 거물이었기 때문에, 귀담아들을만했던 칭찬. 인정에 목말랐던 젊은이의 갈증을 해소해준 칭찬. 겨우 칭찬 한마디였지만, 실패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변한 성격이 다시 변할 수 있었던 전환점. 그리하여 원래의 사교적인 성격도 돌아오고, 결국엔 바라던 공무원도 된다. 해피엔딩이지만, 이들은 노력해서 꿈꾸던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다. 이미리는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했다. 이복동은 게임에서 한 연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가온은 복수를 어느정도 포기하고 미련을 끊는다. 하지만 상관이 없다. 그들은 행복하다. “노력은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시간이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듯이.” 작중 몇 번이나 나오는 이 문장은 노력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작중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 문구에 얽매여 있다. 노력했지만 실패한 패배자들의 이야기니까. 우리 대부분도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취준생이나, 수험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나 해 본 생각일 것이다. ‘이 모든 게 시간낭비일 뿐이라면… 결국 실패한다면?’ 그 걱정에 작가는 솔직하게 말한다. 너무나 솔직하게. 그래서 잔인하게도 들리는 말을... 노력이 보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위로를 받는다. 왜? 그럼에도 나아가는 인물들이 있으니까. 꿈을 이루는 것에는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얻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나도 그처럼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헛고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다. 노력이 반드시 원하던 보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을 걸 알았기에. 이런 작가의 생각은 에필로그에서 특히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에필로그에서 가온은 옛날 자신이 갇혀있던 빛이 없는 세계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600년간 지냈지만, 전혀 성장하지 못한 드래곤을 만난다. 예전 이복동과의 대화에서 드래곤은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 것처럼 말했었다. 그러나 600년이나 있었던 드래곤이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강하게 보여준다. 그 드래곤은 가온에게 묻는다. 나가서 영웅이 되었느냐고. 가온이 그러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드래곤이 말한다. “그럼 더 있어야겠네, 이 공간에. 몸이 더 커지고, 쓸모 있어질 때까지… 어른이 될 때까지…” 하지만 가온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드래곤마저도, 세월은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할 때... 어둠 속에 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나마 해나갈 때. 그때서야 우리는 어른이 되고 영웅이 될 수 있다. ------------------------------ 본인 또한 좌절해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난 이 소설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겜4판은 내가 검미성이 쓴 글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특히 결말부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결말의 대대적인 수정까지 있었다. 작가 후기를 볼 때, 검미성 작가도 당시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작가 본인은 이 작품에 대해 후회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년이나 지난글이지만 이제와서라도 리뷰를 쓰고 싶어졌다. 검미성이 전한 위로가 적어도 내게는 온전하게 전해졌음을 말하고 싶었기에...
높은 평점 리뷰
[이 노력들이 전부 헛수고라면?] "노력은 보상을 담보하지 못한다. 세월이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듯..." 매일 열 여섯 시간씩 연습했다. 퇴근 후에도 자발적으로. 그 연습비에 90만원 밖에 안되는 월급의 4분의 1을 털어 넣었다. 덕분에 매일 라면과 무말랭이만 먹고 있다. 하지만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 레벨업은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리 연습하더라 해도, 자신의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지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미칠 지경이다. 자기보다 뛰어난 수만명의 선배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자기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불안해지고 만다. 이 모든 노력이 결국 시간 낭비로 끝날까 봐. 지난 4년동안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결국 실패했던 것처럼... 모든 노력에는 보답이 있어야 한다. 노력한 자신에겐 승리할 권리, 그리하여 모두에게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다. 처참하게 패배했다. 평소에 연습도 전혀 안하던, 그래서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인간에게… ‘게임4판타지’의 조연, 이미리의 이야기다. ----------------------------------------------------------- 검미성 작가의 ‘게임 4 판타지’는 패배자들의 이야기다. 뼈를 깍는 노력.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보상... 그들은 좌절하고 절망한다. 그래서 판타지임에도 비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린 모두 노력했지만 보상받지 못한 경험이 있으니까. ---------------------------------------------------------- 주인공 가온은 동료들과 이세계로 떠난다. 전쟁에서 하염없이 밀리고만 있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그와 동료들은 시간의 흐름이 다른, 빛이 들어오지 않는 세계에서 200년동안이나 괴물들과 싸우며 죽어나간다. 끔찍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믿었다.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낸 후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들은 영웅이 되어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그러지 못했다. 반신이자 소드마스터가 되어 돌아왔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나있었다. 조국은 혁명이 일어나 사라졌고 동족이던 왕족들은 처형당했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자매들은 더럽혀지기 전에 하이엘프 하고에게 ‘안락사’당한다. 복수할 대상이 너무나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가온은 우선 하고를 찾아간다. 복수는 실패한다. 가온은 처참하게 패배한다. 그것도 세번이나. 치욕적인 패배의 순간. 200년 동안 갈고 닦아온 모든 기술과 신념이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동료들을 잃어가며 버틴 200년. 세상에 10명도 없는 소드마스터가 되어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영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었다. 자신은 눈 앞의 원수 하나도 벨 수 없었다. 기껏 소드마스터가 되었는데, 무엇을 위해서...? 무기력, 끔찍한 무기력이 몸을 감싼다. 가온은 이것이 영웅 서사가 아니었음을 생각한다. 시련은 있었으나 영광은 없었다. 시련만이 계속되다 시련으로 끝나버렸다. 가온은 방 안에 홀로 틀어박힌다. 수십년동안. 그리고 게임을 시작한다. 게임속에서 그는 칭송을 갈구한다. 자신이 마땅히 받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들을... 그 모습은 의도적으로 찌질하게 표현된다. 이복동은 중졸이요 편돌이였다가 이제 쌀먹충이 되었다. 이 게임에서 한몫 단단히 잡고 싶다. 그래서 미래 걱정을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현실의 능력치가 반영되는 가상현실게임이다. 돈을 벌려면 몇 년은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게임이 얼마나 갈 지도 모르는데 몇 년이나 훈련을 해야한다고? 그것도 현실에서 써먹지도 못하는, 총이나 쏘는 연습을? 우연히 주인공 가온과 연이 닿아서 쉽게 돈을 벌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이 운이 언제까지 갈 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감에 저도 모르게 말한 인생상담. 그곳에서 돌아온 것은 팩트 폭행이다. “이 게임 끝나면 생활이 막막해요? 전공이나 자격증 없나요?” “예…” “복동 씨 드래곤이에요? 그래서 세월이 성장을 담보하나요?” “예?” “나이 먹기만 하면 커지고 세지고 그러냐고요. 이대로 시간 흐르면 에인션트 이복동 되고 그러는 거 아니죠?” “아니죠, 인간이니까…….” “그럼 뭐라도 해요. 자격증 습득이든 사격연습이든 간에.” 자극을 받은 나머지 연습을 시작한다. 첫날엔 6시간, 그 다음날엔 4시간. 그리고 다다음날엔 지쳐서 아무것도 못했다. 이복동은 자신의 한계에 절망한다. 역시 자신에게 그런 집중력과 끈기는 없었다면서... 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패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극을 받고 결국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온은 곧 일어날 전쟁을 막겠다고 사람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것을 본다. 전재산을 기부하는 사람, 사후세계를 포기하고 지옥에 떨어지길 각오하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하지만 가온은 내부자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의 노력이 허무로 돌아갈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과거가 곂쳐보이기에 그것은 너무나 괴롭다. 가온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헛된 일임을 설득하며, 도움요청을 거절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도움을 요청한 이미리의 말에 바뀐다. 이미리는 소용이 없어도 되니까 도와달라고 한다. 패배해도 좋다. 그러니 도와줘. 그냥, 빨리 다 끝내고 집어치우게…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들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좀 그만할 수 있도록... 가온은 깨닫는다. 자신이 걱정했던 것들, 그것들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에겐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너무 오래 어두운 집에 박혀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패배와 굴욕은 너무 견디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에, 한 젊은이의 인생을 집어삼켜버렸다. 하지만 계속 요새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가온은 결단을 내린다. 암울했던 과거와 작별하고, 일찍이 끝내야 하는 일을 늦게나마 깔끔하게 끝내기로 결정한다. 이복동은 불안감에 시달리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에 결국 훈련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겨우 2시간씩 했지만, 이제는 6시간씩 버티고 있다. 자기에게 이런 힘이 있었는지 놀랍다. 이런 연습이 전부 무용지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 그리고 현실에서는 쓸모도 없는 일이라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훈련을 계속한다. 훈련에 성과가 보인다. 몇 달간의 훈련으로 실력은 좋아졌고, 프로게이머 랭커(프로 쌀숭이)로 1인분을 휼륭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곧 사라져버릴 게임이지만... 그러나 그는 이 분투가 인생에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워낙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으니. 고작 게임에서의 활약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일보다 가치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소드마스터, 총알마저 베어낼 수 있는 초인들. 그를 상대로 저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행운과 지금까지 해온 훈련이 만든 기적이다. 다시 반복되기 어려운… 결국 게임이 사라지고 나서, 이복동은 다시 백수가 된다. 그러나 그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았던 일들… 그는 결국 정규직 자리를 얻어낸다. 이미리는 가온에게 위로를 듣는다. 사실 가온은 별 생각없이 지나가며 던진 말이었다. 정말로 작은 친절.... 하지만 이미리가 목표로 하던 소드마스터의 그 한마디, 실력이 괜찮다고 한 그 한마디가 사람을 바꾼다. 일찍이 그녀는 젊은 인생에 너무 빨리 연속적인 실패를 겪었다. 사 년을 퍼부은 공무원 시험은 시간 낭비로 끝났다. 국가 프로젝트에서는 누구보다 노력했음에도 뒤쳐졌다. 이 모든 것이 또 거창한 시간낭비로 끝날 것이란 예감이 든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고 체념한 그 시점에... 우연히도 만난 소드마스터가 칭찬 한마디를 건냈다. 칭찬한 사람이 너무나 거물이었기 때문에, 귀담아들을만했던 칭찬. 인정에 목말랐던 젊은이의 갈증을 해소해준 칭찬. 겨우 칭찬 한마디였지만, 실패로 얼룩진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이미 한번 변한 성격이 다시 변할 수 있었던 전환점. 그리하여 원래의 사교적인 성격도 돌아오고, 결국엔 바라던 공무원도 된다. 해피엔딩이지만, 이들은 노력해서 꿈꾸던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다. 이미리는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했다. 이복동은 게임에서 한 연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가온은 복수를 어느정도 포기하고 미련을 끊는다. 하지만 상관이 없다. 그들은 행복하다. “노력은 성공을 담보하지 못한다. 시간이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듯이.” 작중 몇 번이나 나오는 이 문장은 노력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작중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 문구에 얽매여 있다. 노력했지만 실패한 패배자들의 이야기니까. 우리 대부분도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취준생이나, 수험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누구나 해 본 생각일 것이다. ‘이 모든 게 시간낭비일 뿐이라면… 결국 실패한다면?’ 그 걱정에 작가는 솔직하게 말한다. 너무나 솔직하게. 그래서 잔인하게도 들리는 말을... 노력이 보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위로를 받는다. 왜? 그럼에도 나아가는 인물들이 있으니까. 꿈을 이루는 것에는 실패하더라도 무언가를 얻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나도 그처럼 나아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헛고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다. 노력이 반드시 원하던 보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을 걸 알았기에. 이런 작가의 생각은 에필로그에서 특히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에필로그에서 가온은 옛날 자신이 갇혀있던 빛이 없는 세계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600년간 지냈지만, 전혀 성장하지 못한 드래곤을 만난다. 예전 이복동과의 대화에서 드래곤은 가만히 있어도 강해지는 것처럼 말했었다. 그러나 600년이나 있었던 드래곤이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강하게 보여준다. 그 드래곤은 가온에게 묻는다. 나가서 영웅이 되었느냐고. 가온이 그러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드래곤이 말한다. “그럼 더 있어야겠네, 이 공간에. 몸이 더 커지고, 쓸모 있어질 때까지… 어른이 될 때까지…” 하지만 가온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드래곤마저도, 세월은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난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할 때... 어둠 속에 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나마 해나갈 때. 그때서야 우리는 어른이 되고 영웅이 될 수 있다. ------------------------------ 본인 또한 좌절해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난 이 소설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 겜4판은 내가 검미성이 쓴 글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특히 결말부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고 결말의 대대적인 수정까지 있었다. 작가 후기를 볼 때, 검미성 작가도 당시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작가 본인은 이 작품에 대해 후회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년이나 지난글이지만 이제와서라도 리뷰를 쓰고 싶어졌다. 검미성이 전한 위로가 적어도 내게는 온전하게 전해졌음을 말하고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