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3.0 작품

나를 싫어하는 너에게
3.0 (1)

그들에겐 선택권이 없는 혼약이었다. 공작가의 후계자, 세드릭 로웰은 그게 정말 싫었다. “나도 내가 싫다는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한껏 미워할 준비를 갖추고 만난 약혼 상대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무심한 초록색 눈동자를 지닌 소녀가 따분하기까지 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공작이 되는 날, 파혼장을 보내면 되잖아.” 세드릭이 성인이 되어 공작위를 정식으로 물려받을 수 있을 때까지는 무려 4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네가 순순히 파혼해 줄 거라고.” “애 같긴. 네가 공자라는 이유로 세상 모든 귀족 영애가 널 선망하고 졸졸 따라다닐 거라고 생각해?” “난 애 아니거든!” “애 맞네. 미래의 공작이 그렇게 쉽게 화를 내서야.”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에일린이 악수라도 하자는 듯 선뜻 손을 내밀었다. “파혼할 때까진 잘 지내 보자. 피차 얼굴 봐야 하는 사이에 나쁘게 지낼 건 없잖아?” “난 너랑 잘 지낼 생각 없어.” 세드릭은 그날 에일린 캐시어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친 걸 나중에 가장 후회했다. *** “파혼하자며. 근데 왜 자꾸 내 주변의 일에 개입하는데.” 세드릭이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라며 감싸고도는 유모의 딸이 귀족 가문끼리의 불화를 일으킬 뻔한 걸 덮어 줘도 감사 인사는커녕 이딴 소리였다. 에일린은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난 ‘너’를 걱정하는 거야. 그 여자애를 질투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그 여자애 하나 때문에 가문을 통째로 말아먹는 게 걱정이라고.” 세드릭은 처음으로 불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에일린의 기세에 놀란 듯했다. “세드릭 로웰. 넌 어떻게 그렇게 못됐어.” “너…….” 그는 원망이 서린 잔뜩 상처받은 에일린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무언가 크게 잘못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 하필이면 여주를 짝사랑할 서브 남주에게 집착하는 비중 없는 악역으로 환생하다니. 이렇게 난감할 데가 없었다. ‘적당한 때에 쉽게 파혼해 주면 되겠지.’ 에일린 캐시어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그녀조차 감정의 흐름은 통제할 수 없었다. 단지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