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결혼을 이행하겠습니까?” 오메가이자 로즈우드 백작가의 사생아, 멜리사. 유일한 제 편이자 가족인 어머니가 죽었다. “……여긴 백작님의 장례식장이 아닙니다.” “페로몬이 너무 옅어서 확실하지 않았는데, 오메가가 맞았군요.” 가문을 위해 희생하라며 늙은 후작의 후처로 가야 할 처지에 놓인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를 건넨 이안을 찾아가게 된다. “계약 조항은 아주 간단합니다. 후계자가 될 재목을 갖춘 알파를 낳아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 결혼은 달콤한 독주와도 같았다. 제 목숨을 갉아먹으리란 걸 알면서도 달콤함에 중독되어 헤어 나올 수 없는.
“빨리 와서 안겨요, 카렌. 오늘도 너무 예쁘다, 당신.” 카레이나는 라울의 부드러운 음성에 제 귀를 의심했다. “폐하께서는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황후 폐하만을 기억하십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가 죽여 달라고 했던 것도. “널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순진한 얼굴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 “그러니 내가 죽여 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해 줬으면 됐잖아요.” “카레이나, 당신은 죽을 수 없어. 아직 쓸모가 남은 망국의 황녀님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는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는 라울의 선물 공세에도 카레이나는 알고 있다. 기억이 돌아오면 라울은 싸늘한 눈으로 예전처럼 자신의 심장을 베어내리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