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
4.06 (33)

“아사헬에 영원한 영광을.”조국 아사헬이 멸망했다.북마녀의 피를 이은 어린 왕녀의 수호자이자 아사헬의 술사로서아비가일은 끝없는 지옥에 순종해야만 했다.“성하의 총애를 얻어라. 오팔이 되어정보를 빼내고…… 저주의 술을 걸어.”지옥이었던 수용소에 처박은 것으로도 모자라두 번째 지옥으로마저 이끄...

꽃은 썩고 너는 남는다
4.57 (7)

헬렌 고드윈은 파혼을 위한 도구였다. 이용하고 버릴. “헬렌.” 레이먼드가 헬렌의 뺨을 매만졌다. 언제 장갑을 벗었는지 차가웠던 볼이 그의 체온으로 덥혀졌다. “그거 알아요?” “……뭘요?” “전야제, 겨우살이 나뭇가지 아래의 남녀는 입 맞춰야 한대요.” 강한 손길이 가녀린 어깨와 허리를 잡아 제게로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좋아해요. 헬렌.” 고작 키스 따위에 어깨를 떠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동생의 촌스러운 가정교사. 손쉬운 다정함에 아닌 척 차츰차츰 무너지는 게 재밌었다. “사랑이요? 그게 사랑인가요?” “헬렌. 나는.” “전부 기만이었죠.” 입장이 뒤바뀌기 전까지는.

계약 결혼인데 각인했다
4.0 (1)

“계약 결혼을 이행하겠습니까?” 오메가이자 로즈우드 백작가의 사생아, 멜리사. 유일한 제 편이자 가족인 어머니가 죽었다. “……여긴 백작님의 장례식장이 아닙니다.” “페로몬이 너무 옅어서 확실하지 않았는데, 오메가가 맞았군요.” 가문을 위해 희생하라며 늙은 후작의 후처로 가야 할 처지에 놓인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지를 건넨 이안을 찾아가게 된다. “계약 조항은 아주 간단합니다. 후계자가 될 재목을 갖춘 알파를 낳아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계약 결혼은 달콤한 독주와도 같았다. 제 목숨을 갉아먹으리란 걸 알면서도 달콤함에 중독되어 헤어 나올 수 없는.

너를 기억한 시간들
4.0 (1)

“빨리 와서 안겨요, 카렌. 오늘도 너무 예쁘다, 당신.” 카레이나는 라울의 부드러운 음성에 제 귀를 의심했다. “폐하께서는 기억을 잃으셨습니다. 황후 폐하만을 기억하십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가 죽여 달라고 했던 것도. “널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순진한 얼굴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 “그러니 내가 죽여 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해 줬으면 됐잖아요.” “카레이나, 당신은 죽을 수 없어. 아직 쓸모가 남은 망국의 황녀님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는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는 라울의 선물 공세에도 카레이나는 알고 있다. 기억이 돌아오면 라울은 싸늘한 눈으로 예전처럼 자신의 심장을 베어내리란 것을.

한 번 더, 아내
4.0 (1)

“난 당신 아내가 아니에요.”  설원의 단단한 눈동자에는 한 치 흔들림도 없었다.  한데 채하의 눈빛은 더욱 강건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5년이나 수절한 남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이어 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훑어 내렸다.  “과연 당신 몸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확인해 볼까. 덤으로 당신이 데리고 있던 아이, 누구 아이인지도 말이야."  그러니, 한 번 더 아내가 되어줘야겠어.

울어 봐, 빌어도 좋고
4.02 (186)

헤르하르트가家의 걸작 천국같은 아르비스의 젊은 주인 아름다운 새의 학살자 마티어스 폰 헤르하르트. 그의 완벽한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무너뜨리고, 흔들어버린 그의 아름다운 새 레일라 르웰린. - 날개를 자르고, 가두고, 길들였다. ​ 레일라 르웰린을 잡아두기 위한 그 모든 행동들에 대해 마티어스는 주저하지 않았다. 주저하지 않았기에,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았기에, 반성하지 않았다. 반성하지 않았기에, 사과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새, 레일라가 새장을 열고 날아갔을 때 마티어스는 결심했다. 영원히 잃어버려 되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야겠다고. 커버 일러스트 _ 리마 타이틀 디자인 _ 디자인그룹 헌드레드

사랑하는 나의 억압자
4.05 (19)

“처음부터, 내게 일부러 접근했군요?” “……그렇습니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척하느라 힘들었겠다.” 왕가의 핏줄이자 군부 대장의 외동딸 아네트. 2년간의 열애 끝에 아버지의 충실한 수하 하이너와 결혼했다. 마냥 근사하고 다정한 남편과 영원할 줄 알았던 행복. 모든 것이 완벽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남편의 배신으로 가문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이혼해요. 하이너.” “불허합니다.” “내게 아직도 쓸모가 남았나요? 내 부모님은 죽었고 왕정은 몰락했고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 복수는 끝났다고.” “부인. 어디로 가서 행복하시려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요.”  하이너가 입꼬리를 늘여 웃었다. “어차피 그런 거라면 내 곁에서 평생 불행해.” 아네트는 문득 깨달았다. 그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내 손으로 끊어내야 한다는 것을. 일러스트 Ⓒ 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