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은 좋은 가십거리다. 미래를 확정시키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력은 뭇 고대 서사시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예언이라는 주제를 한 소설의 대주제로 잡는건 굉장한 도전이다. 군상극과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예측불가능성의 그늘 아래에서 노니게해야 하는 판타지 소설에서는 예언이라는 골자에 소설의 내용을 욱여넣는 무리한 전개를 감당해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영도는 여기에 흥미로운 설정을 섞었다. 까딱하면 이야기의 전체 골자를 무너뜨릴수 있는, 작품 내외적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그림자 자국의 모든 이야기는 그런 무기인 '그림자 지우개'로부터 비롯된다. 사용자가 떠올리는 단 대상의 모든 '역사'를 지워버리고, 자신조차 그것을 지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 그림자 자국이 드래곤 라자의 후속작이라 명명하는 사람들 때문에 읽기전에는 이 소설또한 판타지 소설의 골자를 따라갈것이라 예상했으나 이 도구가 등장한 시점부터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예언' 이라는 미래를 확정시키는 힘과, '역사'를 지워 인과를 없던걸로 하는 그림자 지우개의 대치는 그 광오함에 맞게 굉장히 난해한 이야기를 수반하게 된다. 예언은 역사를 수반하나? 결과만이 남은 예언이 과연 예언일까 아님 그저 인과의 부산물일까? 같은 거대한 철학적 담론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이영도 특유의 군상극과 소시민적 감정의 세밀함이 내던지는 사랑과 증오, 사랑의 결실과 그 과정에 대한 소멸.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예언이자 과거이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지 더듬어 가며 읽는 그림자 자국은 마치 독자로서 소설의 그림자를 더듬어 가며 그 자국을 만지며 이야기를 탐독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드래곤 라자? 시대가 너무나 지나간 판타지 소설인데...그 후속작이라고?' 라는 감상보다는 이영도의 완숙하고 단단해진 필력으로 써내려가는, ip만 드래곤 라자인 패러독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라는 느낌으로 살면서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한다. 왜, 단 한권뿐인 분량이다. 정말 마땅히 그러지 말아야 될 이유또한 없지 않은가.
높은 평점 리뷰
예언은 좋은 가십거리다. 미래를 확정시키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력은 뭇 고대 서사시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예언이라는 주제를 한 소설의 대주제로 잡는건 굉장한 도전이다. 군상극과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예측불가능성의 그늘 아래에서 노니게해야 하는 판타지 소설에서는 예언이라는 골자에 소설의 내용을 욱여넣는 무리한 전개를 감당해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영도는 여기에 흥미로운 설정을 섞었다. 까딱하면 이야기의 전체 골자를 무너뜨릴수 있는, 작품 내외적으로 치명적인 무기를. 그림자 자국의 모든 이야기는 그런 무기인 '그림자 지우개'로부터 비롯된다. 사용자가 떠올리는 단 대상의 모든 '역사'를 지워버리고, 자신조차 그것을 지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 그림자 자국이 드래곤 라자의 후속작이라 명명하는 사람들 때문에 읽기전에는 이 소설또한 판타지 소설의 골자를 따라갈것이라 예상했으나 이 도구가 등장한 시점부터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가까운 느낌을 받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예언' 이라는 미래를 확정시키는 힘과, '역사'를 지워 인과를 없던걸로 하는 그림자 지우개의 대치는 그 광오함에 맞게 굉장히 난해한 이야기를 수반하게 된다. 예언은 역사를 수반하나? 결과만이 남은 예언이 과연 예언일까 아님 그저 인과의 부산물일까? 같은 거대한 철학적 담론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이영도 특유의 군상극과 소시민적 감정의 세밀함이 내던지는 사랑과 증오, 사랑의 결실과 그 과정에 대한 소멸.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예언이자 과거이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지 더듬어 가며 읽는 그림자 자국은 마치 독자로서 소설의 그림자를 더듬어 가며 그 자국을 만지며 이야기를 탐독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드래곤 라자? 시대가 너무나 지나간 판타지 소설인데...그 후속작이라고?' 라는 감상보다는 이영도의 완숙하고 단단해진 필력으로 써내려가는, ip만 드래곤 라자인 패러독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라는 느낌으로 살면서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한다. 왜, 단 한권뿐인 분량이다. 정말 마땅히 그러지 말아야 될 이유또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