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시에서 제일가는 외식업체, 명화의 장녀 세화. 외도를 일삼던 아버지와 집안을 건사하고자 일에 몰두하는 엄마. 동생을 돌보고 일손을 도울수록 커지는 책임감과 기대 어린 시선에 지쳐 가던 그녀는 엄마가 정해 준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로 들어온 혼담. 상대는 남평시 대지주인 권 회장의 막내아들이자 청선재의 후계자, 권윤학이었다. 비상한 머리와 타고난 사업가적 기질, 완벽한 외형. 그리고 1년 만에 이혼하고 돌아온 이혼남인 그는 세화의 첫사랑이었다. 원치 않는 혼담에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려던 동생을 대신하여, 세화는 이것을 기회로 삼고 맞선에 나간다. “진짜 결혼 생각이 있군요?” “네, 맞아요.” 가늠하는 듯한 시선에도 세화는 아랑곳없었다. 그렇게 엄격한 혼전 계약서로 맺어진 두 사람. 저를 건드리지 않는 윤학에 애가 탄 세화가 그를 자극하고, 윤학은 아내에게 눈을 뜨는데…. *** 여자의 몸은 신비로웠다. 무슨 살이 그 따위로 보들보들한지. 활동은 하나도 안 하는 사람처럼. 달짝지근한 살 냄새는 또 뭐고. 모든 여자가 다 그렇게 부드럽고 달진 않을 거 아냐. 진짜 스물여섯 맞나? 윤학은 피우던 담배 불씨를 튕겨서 꺼트리고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이제는 안다. 명세화가 말할 때마다 왜 실밥이 간질이는 것처럼 거슬렸는지. 헛웃음이 터지고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 남자, 아니 그 새끼가 쓰레기라는 건 듣자마자 알았다. 시작은 사소한 호기심이었다. 두 번의 파혼 전적이 있는 동생의 약혼자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차갑지만 다정하고, 강인하지만 우아한 남자. “나랑 잘래?” “싫어.”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는 건 취향이 아닌데, 오늘은 그런 게 끌리네.” “…….” “정말 나랑 잘 생각 없어요?” 그러나 직접 만나 본 남자는 소문대로 다정한 쓰레기였고, 가볍고 악한 본성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희에겐 남자가 필요했다. 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였으니. 그렇게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속이며 남자의 사랑을 갈구했다. 온통 거짓뿐인 연애의 시작이자, “좋아. 좋아해. 좋아해. 내가 당신을 많이 좋아해….” “계속 좋다고 해 봐. 실컷 예뻐해 줄 테니까.” 결국엔 죄가 될 사랑이었다.
“끌려?” 눅눅히 젖은 목소리가 무례하게 소현을 붙잡았다. 느리게 입을 벌린 소현이 말했다. “응, 좀 그러네.” 술에 취해 잘못 들어간 방에서 어떤 한 남자를 마주친다. 실수로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끌린다며.” 휘청이듯 앞으로 기운 목소리가 일순 소현의 청각을 흩트렸다. 소현이 물러설 새도 없이 남자가 고개를 비틀었다. “나도.” 흐트러진 남자의 숨이 공기와 함께 피부로 달라붙었다. “그 말에 관심 생겼는데.” 독 같은 언어가 소현의 가슴에서 발화했다. 녹아내린 끈적한 타액을 삼킨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얌전히 있었으니 뭐라도 줘야지?” 노골적인 유혹 앞에 소현은 무방비했다.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서로를 원해 달려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관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남자가 다시 소현을 찾아와 뜻밖에 제안을 내민다. “나랑 세 번만 만나.” “너 지금 하고 싶은 게 세 번 만나는 거야, 아니면 세 번 자고 싶은 거야?” 그가 느리게 혀를 움직였다. “당연히 뒤에 거.” 직설적인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