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아나 셀던. 난 마땅한 금액을 지불하고 당신을 얻었습니다.” 결혼 상대가 바뀌었다. 그것도 결혼식 당일에. 차갑고 오만한 목소리가 라비아나의 귓전을 울렸다. 어릴 적 사고로 가족과 눈을 잃고 타인에게 얹혀사는 처지이지만, 이렇게 팔려 가듯 결혼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내 아이를 낳으세요. 아이만 낳으면 어디든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녀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일방적인 언사. 알베르토 웰 로엔 공작은 그런 남자였다. “왜 하필 저인가요?” “당신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여자니까.” “…어디든 보내 주겠다는 약속, 꼭 지켜 주세요.” 라비아나는 결심했다. 아이를 낳으면, 남편에게 버려지고 나면, 이 끔찍한 생을 끝내 버리자고. *** 알베르토는 라비아나와의 결혼을 쉽게만 생각했다. 제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여자니 편하게 제 목적을 이루어 줄 거라고 여겼다. “오지 마세요. 돌아가세요, 공작님.” “날 두고… 떠날 겁니까?” 그녀를 붙잡을 수도 없게 된 지금에서야 그게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는 걸 알아 버렸다. 마침내 그녀가 알베르토에게서 등을 돌렸다. 내내 손 닿는 거리에 있던 라비아나는, 매정하게도 그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려 하고 있었다. “라비아나!” 절박한 비명이 숲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