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19세 관람가 작품을 15세이용등급에 맞게 클린버전으로 수정한 작품입니다. 외신 통신사 TPA 소속 종군기자인 하조윤은 내전지역 취재 중 사고에 휘말려 5년 간 혼수상태에 빠진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고 귀국해 옛 연인을 찾아가지만 연인의 옆은 이미 다른 누군가로 채워져 있었는데…갓난 시절부터 친구였고, 머리가 굳고 나서는 사랑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별을 생각해본 적 없던 연인에게 내가 아닌 다른 연인이 생겼다. 세상은 모든 결과가 나의 이기심과, 나의 무책임 탓이라 손가락질한다. 헤어짐에도 시간과 방법이 필요했지만, 한 번도 이별을 경험하지 못한 하조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자신을 잊으려는 옛 연인에게 매달릴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으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마음은 필요 없고 오로지 몸만 즐기자는 이 남자. 서른 한 해 동안 살아온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하조윤은 사랑과 헤어짐, 그리고 책임감을 처음으로 직면하게 된다.
교후부의 막내 교연오는 어느날 자신의 집에 찾아온 수려한 외모의 사내를 만난다. 첫인상과 달리 허술함이 있는 남자와 왕래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던 중 그 남자가 혈육을 죽이고 제좌에 오른 현재의 황제라는 걸 알게 된다. 황제가 교후부에 온 것은 교씨 가문에서 후궁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친척 누이들 중 누군가 남자의 후궁에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연오는 기분이 기묘한데. 연오를 찾아온 황제는 증표를 건네며 그의 후궁이 되어줄 것을 청한다. 단단한 손이 연오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너로 하고 싶다.” 남자의 손이 붙잡은 연오의 손을 돌려 손바닥이 드러나게 했다. 돌려진 손 위에 우각으로 만든 봉황문 패가 올려졌다. 우각 봉황문 패가 떨어지지 않게 연오의 손을 조심스럽게 접은 남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무엇을…….” 연오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을 깜빡였다. 지금 자신이 보는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일까. “나는 네가 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연오야.” 사랑인 줄 알고 황제의 후궁이 된 연오. 그러나 첫연정이 거짓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황제에게 진짜 정인이 따로 있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후궁들까지. 친척이라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태후는 연오의 사람들을 빼앗고 핍박하기까지 해, 후궁에서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그러던 중 자신이 입궁한 이유가 황제의 진짜 정인의 입궁을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게 되고. 연오는 자신이 두 사람의 사랑 사이에 낀 방해물이자, 악역이란 것을 깨닫는다. “왜, 왜 하필 저였습니까? 태후께서 후사를 볼 교씨 일족을 바라는 걸 폐하께서 몰랐을 리가…….” 연오는 황제의 외면이 어쩌면 그가 교후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예정돼 있었던 거라 의심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 설마 그건 아니기를 바랐다. 제게 금세 손을 뻗어온 것처럼 금세 관심이 식은 것이기를. 황제가 연오에게 다가섰다. 키가 큰 사내가 다가오자, 충격으로 얼룩진 얼굴에 그림자가 내렸다. 내내 엄격하게 예법을 따르던 연오는 몸에 익혀둔 예를 취하는 것도 잊었다. “연오야.” 사내의 헌앙한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때, 연오가 남자와 친밀해졌다고 여겼을 때 지었던 그 미소는 사람의 시선을 붙드는 힘이 있었다. “…….” 연오는 저를 부르는 다정한 저음에 자신이 진실로 속았다는 걸 받아들였다. 남자가 거짓으로 꾸며낸, 친근한 부름에 못난 마음이 일렁거렸다. “네가 아둔하고 모자랐다면 좋았을 텐데. 네 처지를 파악하고 좌절하여 존재를 낮추고 뒷방에 나앉았으면 모두가 편하지 않았겠느냐.” 남자가 내뱉은 부드러운 소곤거림에 연오의 어깨가 크게 오르내렸다. 다정함을 가장한 매끄러운 말은 봄바람처럼 따뜻했다. 친근한 체할 뿐인 속삭임에 그리움을 느끼고, 아쉬움을 떠올리는 제 감정이 서글프고 한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