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사슴> “왜, 저였습니까?” “너는 나를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마리 짐승이 뒤엉킨 채 생사를 걸고 싸우는 중이었다. 원록이 다가갔다. 한 마리 짐승이 다른 짐승을 문 채 걸었다. 승패가 갈라진 것이다. 걷던 짐승이 달빛의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사슴이 꿩을 입에 물고 있었다. 꿩의 몸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사슴과 원록의 눈이 마주쳤다. 한참 동안 원록을 보던 사슴은 원록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숨이 완전히 끊어진 꿩을 놓았다. 사슴은 무척 지쳐 보였다. 돌처럼 서 있는 원록을 간헐적으로 의식하면서 꿩을 뜯어먹었다.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오늘의 작가상 · 네오픽션상 수상 작가 이재찬 신작 장편소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게 문제지.” 섬세하고 강렬한 미스터리 “강렬하고 가혹”하며 “잘 썼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소설의 읽는 맛을 제대로 보여준 놀라운 신예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오늘의 작가상과 그 이듬해에 네오픽션상을 휩쓸며 등장한 이재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네오픽션에서 출간되었다. 전작 『펀치』와 『안젤라 신드롬』을 통해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 작가는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을 통해 또 한 번의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추리극을 선사한다.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여전하다. 짧게 치고 나가는 긴박하고 감칠맛 나는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순식간에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아울러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깊이 있는 시선에 홀연 빠져들게 된다.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은 컨테이너하우스 화재사고로 사망한 한 남자를 둘러싸고 사건이 전개된다. 그는 사건 발생 전 생명보험을 들었다. 수령액은 10억 원. 수익자는 그의 가족들. 단순한 화재일까? 아니면 방화사건일까? 추측과 의혹은 난무한다. 그와 가족들 간의 관계가 수상할 뿐더러 죽기 전 그가 ‘초농’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기 때문이다. 한편 남자가 나고 자라, 결국 사망까지 이르게 된 가락읍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야만성과 원시성을 간직한 곳이다. 동네 사람들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남자가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숨 막히는 미스터리가 이 소설에 펼쳐져 있다.
<안젤라 신드롬> 철저히 기획된 사건, 치밀하게 조작되고 은폐된 음모를 파헤친다! “목격자는 왜 없을까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수없이 조사해봐서 아는데 현실의 범죄는 영화보다 어설프거든요. 분명 목격자가 있을 텐데…….” 영화 <추격자>, <파괴된 사나이> 그리고 드라마 <추적자> 등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납치를 모티브로 한 하드보일드 추리스릴러인 『안젤라 신드롬』은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돼지소녀’ 혜실이 납치되고, 돼지소녀 이모인 현심의 의뢰로 탐정에 가까운 흥신소 직원 하철이 ‘돼지소녀’가 납치된 시기와 장소, 가족과 친척들, 사건의 목격자들과 수사 관련자들, 복잡한 사건 경위와 수사 자료 등을 하나씩 추적하고 재구성해나가면서 돼지소녀 납치를 둘러싼 섬뜩하면서도 거대한 진실과 마주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국가도 엄청난 인력과 장비를 보유한 공공기관도 또는 그 누구도 보호해주거나 찾아줄 수 없는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지극하고도 애절한 부성을 작가 이재찬만의 독특한 사유로 풀어내고 있다. 영복은 어디에도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도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영복은 안젤라 신드롬이 아니었다. 정말로 딸을 만났고 딸을 찾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은심의 말대로 영복은 소심하고 약해서 도저히 홀로 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고 1년이 지나자 세상은 더 이상 영복을 도와주지 않았다. 영복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_본문 중에서 상당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함에도 그 인물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살아 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하철이라는 인물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짜여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다. 또한 딸을 잃어버린 아버지 영복, 실종사건을 파헤치는 하철, 돼지소녀 실종사건의 핵심인물 두만에 대한 각각의 아픔과 상처가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지극한 관심과 넘치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들’로 인해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독서의 쾌감을 100퍼센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발표할 이재찬 작가의 소설이 기대되는 이유다. ‘가능성 있는’ 또는 ‘이미 검증된’ 또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