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늘어진 색 바랜 추리닝.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여자이기를 포기한, 그냥 인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루하루 일 당직 알바와 편의점을 골라 일을 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휴대폰을 쳐다보며 길을 걷다 경미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아씨….”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돌려보니 광이 번쩍 나는 웬 고급 외제 차 한대가 보인다. 그리고 곧바로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괜찮습니까? 많이 다치시진 않았는지.” 그래, 매일 할 것도 없는데 이참에 그냥 드러눕자. 앓는 소리를 내며 발 연기에 들어간 그녀는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려 했는데, 남자가 건넨 명함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결국 자신이 하려 했던 발 연기를 접고 그냥 도망을 치려 하지만 때마침 검사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자신을 붙잡는 간호사 덕에 꼼짝없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다음날 자신을 찾아온 대표라는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데… 이건 뭐, 반듯해도 너무 반듯해. 가지런한 슈트차림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올 곧은 머리스타일… 으…소름끼친다, 진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는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치료 다 받으시고, 혹여 후유증이라도 생기신다면 그때 다시 연락 주십시오. 책임지겠습니다.” “…….” 이걸 어쩌지? 그냥 다 솔직하게 말할까? 그러다 되레 고소라도 당한다면…아휴…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남자의 명함을 받아드는데… 그것이 시작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이 궁핍한 생활을 180°달라지게 만들어버린 남자. 소름끼치도록 반듯하기만 한 남자를 그녀는 어느 순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어렸을 적부터 가장 동경하는 대상이었던 세일러 문. 그녀가 세일러 문을 동경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정의였다. 남들보다 조금 유별난 오지랖을 천성으로 알고 자란 그녀는 소소한 일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니. 그런 그녀가 성인이 되면서 택할 수 있었던 일은, 절대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강력계 형사. 여자로써 쉽지만은 않은 직업이었기에 모두가 반대를 했었으나, 그녀의 옹고집을 꺾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녀는 피나는 노력 끝에 당당히 순경 공채에 합격을 하고. 첫 출근을 하던 그날, 하필 만원 버스에서의 치한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묘한 카리스마를 지닌, 웬 짐승 같은 남자를 동시에 마주하게 되는데... 좌충우돌, 유쾌 발랄 로맨스! 너를 포위한다. 지금 시작합니다.
그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직장 내에서도 인기가 좋은 편이었고 남자들도 제법 따르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취기만 올랐다 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입술을 들이미는 고약한 술버릇. 그런 그녀에게 딱 걸려버린 한 남자. “으아아악! 이, 이거 뭐야. 빨리 안 떼어 내! 으어… 아아악!!!” 그녀의 눈이 길게 늘어졌다. 부드러운 입술 감촉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묘한 설레 임마저 들었다. 서서히 입술에 힘을 빼던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를 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에이, 퉤. 으헤헤…, 탁….” 입술에 묻은 침을 닦아내던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정신을 잃고 테이블에 이마를 박으며 쓰러지고 말았고, 그런 그녀를 어이없게 바라보던 남자는 기가막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마는데….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남자는 쓰러진 그녀를 보며 헛웃음을 짓고 만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시작했다….
“우리 이혼해요.”“…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당신은 날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아니, 사랑해.”“숨 막혀…. 제발, 날 좀 놔줘요.”“…….”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나뭇가지가 바람에 흩날리듯 어지럽게 흐트러졌다.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은 시들해진 꽃을 연상시켰다.그러나 남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와 헤어진다는 건, 단 한 번도 아니, 꿈에서조차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일이었으니까.집착과 소유욕.그것이 여자가 남자를 떠나려 한 이유였다.남자는 그것 또한 사랑이라고 말했다.여자는 점점 지쳐만 갔다.남자의 삐뚤어진 사랑이 그녀에겐 외로움이었고, 고독이었으며 때론 지독하게 아픈 상처일 뿐이었으니까.그 사랑…… 조금만 내려놓으세요.그냥 당신에게 기댈 수 있을 정도만…… 그거면 충분해요.남자의 창백했던 낯빛이 조금씩 제 색을 찾아 변해가기 시작했다.<15세이용가 개정판입니다.>
그는 나름 잘 나가는 교수였다. 학생들에게 인지도도 높았고 미술학부에 회화 전공이라면 그의 수업은 거의 필수였다. “유지아.” “…….” 첫날부터 결석? 근데 하필 이름이……. 유지아. 자신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 중 단연 이 이름이 눈을 사로잡았다. 첫사랑…… 자신에게 있어 모든 희노애락을 다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던 그녀. 그녀도 유 지아였다. 괜히 학생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지아는 벌써 세 번째 결석이다. 이제 한 번만 더 결석을 하면 자동으로 F처리. 그는 오늘도 출석부를 펴고 이름을 읊어댔다. “유지아.” “…네.” 작고 청아한 목소리. 쑥스러운 듯 손을 들고 있는 지아를 본 순간, 그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녀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으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그리고 그는 환상에 젖어버렸다. 유 지아, 이젠 널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그는 지아에게 미친 듯 빠져버렸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여행길에 오른 그녀는 운명처럼 그를 처음 마주했다. 밝은 피부 톤에 우수에 젖은 듯한 깊은 눈망울.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웃는 눈웃음에 그녀의 심장이 요동을 쳤다. *** “저기…… 미안한데요. 혹시 물티슈 있어요?” “네? 아, 예. 있어요.” “한 장만 주심 안 될까요? 창틀에 끈적한 게 있었나 봐요. 손가락이 좀 찝찝해서…….” “아, 네. 잠시만요.” 주섬주섬 가방을 열고 휴대용 물티슈를 통 채로 그에게 건넸다. “한 장이면 되는데…… 감사합니다.” 그는 정말 딱 한 장의 물티슈를 뽑아들곤 나머진 다시 그녀에게 건네고 있었다. 물티슈를 받아든 그녀는 이상하게 심장이 울렁거렸다. 자신을 보며 시종일관 반달모양을 만드는 그의 눈꼬리에 괜한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처음이었다. 이성을 보고 가슴이 설렌 것은…….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했다.
“아저씨…… 아니, 사장님. 우린 안 되는 건가요?”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예요.” “보채지 마. 나도 생각이란 걸…… 해야 하니까.” “…….” 동갑내기? 그들은 한 바퀴 세월을 거슬러 띠 동갑내기였다.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한데 그들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끌리며 감정의 특별함을 느끼게 되던 그때, 띠동갑이라는 장벽이 두 사람을 버겁게 만들었던 터였다. 쉽지 않은 연애, 세대 차이를 넘어서 공감이 형성되기까지 그들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갈망하는 애틋함은 더없이 커져만 가는데……. 36살 남자와 24살의 여자. 동갑내기인 이 두 사람이 아무 조건 없이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처음 뵙겠습니다. 강지훈입니다.”“네, 안녕하세요. 이현아입니다.”“…….”서먹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한 불편한 만남.부모님의 등살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맞선이라는 자리에 나왔던 그들은 서로를 마주하는 눈빛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이런 자리 괜찮으십니까?”“…아니요. 많이 불편해요.”“근데 왜 나오신 겁니까?”“그 답은 그쪽도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그렇군요. 좋습니다. 그럼 한 달에 한번 씩, 마지막 주 토요일, 그렇게 딱 5번만 만나봅시다. 진지하게.”“제안인가요? 이유…는요?”“결혼…해야 하니까요.”“…….”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그의 이유.한데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우수에 찬 듯한 그의 노골적인 눈빛이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일까? 첫 만남부터 불편했지만, 그녀는 한 달에 한번 5번의 만남을 약속했다.그리고 시작된 감정의 변화.만남을 거듭할수록 그에게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데….그가 마지막 5번째 만남에서 또 다른 제안을 했다.